부처님은 상·락·아·정의 대열반에 들어 계시니, 무위법신을 얻어서 두 가지 생사를 받지 않음이 크게 영원한 경지〔大常〕이고, 불가사의한 팔자재의 크게 자재함이 대아(大我)이며, 끊임없는 즐거움과 크게 고요함이 큰 안락함〔大樂〕이고, 몸과 마음과 업이 크게 청정함이 크게 청정함〔大淨〕이라 한다.

이러한 무량한 열반(涅槃)의 사덕(四德) 중에서 상덕은 분단생사, 변역생사의 두 가지 생사를 여읜 영원한 생명을 말함이다. 우리 중생들은 미혹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보니 크고 작은 선업 악업을 지어서, 이로 인하여 행복하고 불행한 과보를 초래한다. 곧 선·악업의 길고 짧음, 크고 작음에 의하여 우리의 삶과 미래의 생사과보도 차별이 생기므로 이를 분단생사라 한다. 이러한 분단생사의 원인이 되는 미혹한 마음을 여의고 생사고해를 벗어나 고요하고 적정한 열반에 들어간 이승의 열반이나, 중생제도를 위해 생사고해의 세계에 들어가 자신의 의지로 생사를 받음을 변역생사라 한다. 부처님을 이러한 두 가지 생사의 근본이 되는 무명번뇌를 다 끊고 모든 생사를 받지 않으니 대열반이라 한다.

열반(涅槃) 사덕(四德)의 둘째 대아를 얻으신 아덕(我德)이란 팔자재아 또는 팔대자재아(八大自在我)를 말한다. 무량한 인연으로 얻는 대아(大我)가 있으므로 대열반이라 한다. 여기서 대아란 내 것이라든가 나라는 집착이 없어서 크게 자재한 것을 뜻한다. 경에서는 팔자재 또는 팔자재아라고 한다.

팔자재는 첫째, 한 몸이면서 무수한 몸을 나타냄이다. 많고 적음이 자재(自在)한 것이니, 여래의 무위법신은 능히 하나의 몸으로 여러 몸을 나타낸다. 마치 몸을 티끌과 같이 나타내어 시방의 무량한 세계에 가득하게 할 수 있다. 여래의 몸은 티끌이 아니지만 이와 같이 자재하게 티끌 같은 몸을 나타내는 것이다.

둘째, 하나의 미진(微塵) 같은 몸을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차게 함이다. 여래의 법신은 제한을 받지 않는 까닭이다. 크고 작은 것이 자재함이다. 하나의 미진의 몸으로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우니, 여래의 몸이 실제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것은 아니지만 걸림 없이 두루하니 자재하다고 한다.

셋째, 대천세계에 가득 찬 큰 몸이면서도 가볍게 날아올라 어떤 곳이라도 감이다. 가벼우며 무거움이 자재하다. 여래는 가볍고 무거움이 없지만 자재하여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므로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몸으로 훨훨 날아서 20항하사와 같은 많은 세계를 지나기도 하지만 걸림이 없다.

넷째, 상대에 따라 무량한 종류의 몸을 나타내면서도 언제나 한 곳에 있음이다. 여래는 한 가지 일을 하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각각의 여래를 보게 한다. 곧 여래의 몸은 한 세계에 있지만 다른 세계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하니, 여래는 한 마음으로 편안히 머물러 움직이지 않지만 변화하여 나타내는 한량없는 종류의 각각에 마음이 있게 한다. 그러므로 자재한 까닭에 자재를 얻는다고 한다.

다섯째, 여래는 육근(六根)을 서로 자재하게 쓰는 것을 말한다. 여래는 하나의 근(根)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닿음을 느끼고 대상을 알기도 하고, 또한 하나의 근으로 보지도 듣지도 맛보지도 닿음을 느끼지도 대상을 알지 않기도 한다. 육근이 이와 같이 자재하므로 대아라고 한다. 곧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맛보거나 촉감을 느끼거나 하시며, 다른 감각 기관도 또한 그러한 것을 말한다.

여섯째, 여래는 일체법을 얻었으면서도 법을 얻었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일체법에 자재하고, 자재하므로 일체법을 얻지만, 마음에 얻었다는 생각이 없다. 자재하므로 일체법을 얻고 일체법을 얻으므로 대아(大我)라고 한다.

일곱째, 설법이 자재함을 말한다. 게송 하나의 도리를 설하심에 있어서 무량겁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지혜와 변재(辯才)가 무궁하여 계행이나 선정이나 보시 등을 설하되 한량없는 겁을 지나도 그 뜻을 다하지 못한다. 또한 여래는 설하고 듣는다는 생각을 조금도 내지 않는다.

여덟째, 널리 나타나는 것이 자재함이다. 여래께서 중생을 위해 두루 몸을 나투는데 마치 허공의 성품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여래의 형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래는 자재하므로 일체로 하여금 보게 한다는 것이다.

열반사덕의 셋째는 대락(大樂)이다. 대열반은 큰 안락이 있으니 첫째는 모든 생사의 즐거움이 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사 속에서의 즐거움이 끊어지지 않으면 괴로움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대열반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고 한다. 둘째는 대적정의 고요함을 얻음이니 세간의 시끄러움을 멀리 여의고 선정의 즐거움을 얻음이다. 셋째는 일체법을 잘 알아서 크게 즐겁다고 한다. 넷째는 몸이 무너지지 않음을 아니 여래의 몸은 번뇌의 몸이 아니므로 금강석과 같아 무너지지 않으므로 안락하다고 한다.

열반사덕의 셋째, 대정(大淨)이다. 대열반은 순전히 청정함을 말한다. 청정함에 넷이 있다. 첫째는 25유 삼계의 존재는 부정하다고 하고, 삼계의 생사를 능히 끊은 것을 청정하다고 하며, 청정함을 열반이라고 한다. 둘째는 삼업이 청정함이다. 범부는 업이 청정하지 못하니 열반이 없고 여래는 업이 크게 청정하니 대열반이라고 한다. 셋째는 몸이 청정함이니 몸이 무상하면 부정하다고 하고, 여래의 몸은 항상 하므로 크게 청정하다고 한다. 넷째는 마음이 청정함이니 마음에 누(漏)의 번뇌가 있으면 부정하다고 하고 부처님 마음은 이러한 누가 없으므로 크게 청정하다고 한다.

이기운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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