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교설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절대적 진리라는 입장을 가진 이에게는 불경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호진 스님은 강의할 때 ‘완벽한 이론은 없다. 역설적이지만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스님이 그 예로 든 것이 불교의 핵심이론이면서도 서로 상충하는 무아(無我)와 윤회(輪廻) 문제였다.

무아는 ‘고정불변하는 존재는 없다’는 이론이고, 윤회는 자신이 지은 과보에 따라 거듭 태어난다는 이론이다. 이 두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고정불변하는 ‘나’가 없는데, 윤회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하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두 이론 중 하나를 포기하면 불교의 이론체계 또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부처님 재세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이론들이 도출되었고, 이 문제는 근본불교가 여러 부파로 나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972년 프랑스에 유학한 이래 원시불교(근본불교) 연구에 천착해온 호진 스님이 1992년에 출간한 《무아·윤회 문제의 연구》 전면 개정판을 23년 만에 냈다. 이 책은 호진 스님이 1981년 프랑스 파리제3대학(소르본느대학)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나선비구경의 무아와 윤회 문제>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출간 당시 큰 화제였다.

호진 스님은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왜 30년도 더 지난 지금 고쳐 썼을까. 스님은 ‘다시 쓰는 머리말’에서 “이 책이 ‘30대의 학생이 쓴 논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다. 여러 부분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라며 전면 개정판을 내게 된 이유를 밝혔다.

1992년 판본과 크게 달라진 부분은 《우빠니샤드》의 윤회와 해탈(mokṣa), 그리고 초기불교의 무아와 열반에 관한 부분이다. 《우빠니샤드》에 나타난 윤회와 범아일여(梵我一如)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 판본보다 더욱 깊이 탐구했고, 초기불교 부분은 핵심은 전과 동일하지만 더욱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탐구했다.

예나 지금이나 ‘무아와 윤회 문제’를 논의할 때는 대부분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나 그 빨리어본인 《밀린다빵하(Milindapaña)》에 의지한다. 이 문제에 대해 《나선비구경》보다 더 나은 설명을 내놓은 문헌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호진 스님은 《나선비구경》이 설명하는 무아설과 윤회설이 어떤 내용인지, 두 교리를 어떻게 적절히 양립시키고 있는지, 초기경전의 내용과 비교하여 얼마나 정통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또한 교리적으로 얼마나 튼튼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하여 세밀히 연구했다.

2장 ‘윤회사상의 기원’에서는 《베다(Veda)》, 《브라흐마나(Brāmaṇ)》, 《우빠니샤드(Upaniṣad)》 등 인도 고대문헌에서 윤회사상의 기원과 그 구조, 기능 등을 자세히 살폈다.

제3장 ‘초기불교의 무아·윤회설’에서는 《아함경(阿含經)》을 중심으로 무아설과 윤회설의 의미와 구조, 실천 등 여러 면을 고찰했다. 윤회설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모색된 교리, 그리고 무아·윤회의 양립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살폈다.

제4장 ‘《나선비구경》의 무아·윤회설’에서는 《나선비구경》의 내용과 성립연대, 경의 성격 등을 고찰해 불교사상사에서 《나선비구경》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살폈다. 지금까지 《나선비구경》은 기원전 2세기 중엽 인도 서북지방을 통치했던 메난드로스 왕과 나가세나 비구 사이에 실제로 행해진 토론을 집대성한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지만, 호진 스님은 기원후 1세기경 불교교단 내외에 제기된 교리상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논서(論書)라고 결론 내렸다. 호진 스님은 또 《나선비구경》에서 무아와 윤회를 어떻게 양립시키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함께 고찰했다.

제5장 ‘《나선비구경》의 무아·윤회설의 자료 출처’에서는 초기경전과 부파불교 문헌에서 무아, 윤회와 관련 있는 자료를 찾아 《나선비구경》과 비교·검토했다.

호진 스님은 이 책에서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스님은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 문제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면서, 《나선비구경》보다 더 나은 설명을 할 수는 없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불광출판사 | 440쪽 | 2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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