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는 마늘 먹는 것을 금기시한다. 마늘이 이성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빠알리 율장에서 전하는 내용은 사뭇 다르다. 마늘밭 주인이 비구니들에게 마늘을 갖다 먹도록 했는데, 욕심을 내 너무 많은 마늘을 캐간 것이 문제가 됐다. 또 부처님이 설법할 때 한 비구가 구석에 앉아 마늘을 씹어 먹은 것도 문제가 됐다. 부처님은 승려가 마늘을 먹으면 비구니는 속죄죄로, 비구는 악작죄로 다스리도록 계율을 정했다.

‘마늘을 먹지 말라’는 내용은 같지만 성립 인연에 따라 달리 해석·적용될 수 있는 것이 계율이다. 이처럼 계율은 정신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원음에 가깝게 기록하고 있는 빠알리 율장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

빠알리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불사에 매진해온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 전재성 박사가 《빅쿠비방가 - 율장 비구계》와 《빅쿠니비방가 - 율장비구니계》를 출간했다. 지난해 《마하박가 - 율장대품》과 《쫄라박가 - 율장소품》 번역에 이은 빠알리율장 완역이다.

《빅쿠비방가》는 신국판 1994쪽, 《빅쿠니방가》는 217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원고지로는 무려 1만 2314장과 1만 3119장에 이른다.

이 책의의 특징은 북방불교 모든 율장의 근원이 되는 상좌부 《빅쿠비방가》·《빅쿠니비방가》를 우리말로 옮긴 최초의 완역본이라는 점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생략 부분을 거의 완전히 복원해 번역한 것이 돋보인다. 《빅쿠니비방가》는 《빅쿠비방가》와 공통된 부분을 생략하고 비구니 고유의 계율만을 기록했는데, 전 박사는 세계적인 연구 성과를 참조해 비구니계율을 모두 복원한 후 번역했다.

《빅쿠비방가》·《빅쿠니비방가》는 승단추방죄법인 살인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추악죄나 무죄가 될 수도 있다고 밝힌다. 의도하지 않았거나, 알지 못했거나, 살의가 없는 경우나, 정신이 착란된 자이거나, 마음이 심란한 자이거나, 애통해 하는 자이거나, 초범자는 무죄라는 것이다. 전 박사는 “2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법률정신으로 보면 가장 현대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설명했다.

승단추방죄법에서 또 주목할 만한 점은 사음과 관련된 성적 교섭 문제가 살인이나 투도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살인이나 투도는 세속적 법리체계로도 걸러지지만 성적 교섭문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전 박사에 따르면 빠알리 율장을 통틀어 사음과 관련된계율이 무려 전체의 1/3에 이른다.

《빅쿠비방가》·《빅쿠니비방가》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의무계율이다. 의무계율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포살일에 송출하는데, 이것은 계율을 마음에 새롭게 새기고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도록 고려한 것이다.

전 박사는 대장경 가운데서도 율장 번역이 가장 어렵다 밝혔다. 율장은 당대의 고유한 사회, 경제, 문화와 일상적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어서 그것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두 손가락 마디’를 뜻하는 ‘양지(兩指)’를 해석할 때 인도의 역사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정오 무렵이 지난 뒤’로 번역하지 않고 ‘두 손가락으로 음식을 집는 것’으로 오역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 박사는 “입문적 수행단계에서는 경장 자체가 율장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보다 정밀한 수행을 위해서는 경장에서 율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수행자는 먹어야 하는 약인 경장과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의 처방인 율장에 대해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 2000쪽 내외 | 각권 1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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