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재심호계원이 서의현 전 총무원장에 대해 94년 멸빈 징계를 무효화하고 공권정지 3년을 판결하자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당장 94년 불교개혁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비상대책회의가 꾸려졌다. 이 모임엔 참여불교재가연대, 대불련, 바른불교재가모임, 청년여래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등 14개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출범하자마자 ‘서의현 복권반대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지난 10일엔 94개혁종단 동참 스님 가운데 15인이 긴급회동을 갖고 ‘서의현 재심판결 파동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도 입장문을 통해 “서의현에 대한 재심판결의 과정과 내용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이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적인 문제는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면서 “중앙종회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해 종단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를 요구한다”고 했다.

참여불교재가연대 교단자정센터가 이를 즉각 반기고 나섰다. 교단자정센터는 13일 앞서 있었던 15인 스님들이 재심판결의 과정과 내용에 대한 진상규명을 결의한 것을 지지한다면서 실제로 서의현 전 총무원장 재심판결이 어떻게 이루어졌나 진상규명하자고 의지를 보탰다.

같은 날 94개혁에 앞장섰던 재가자들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재심결정은) 전국승려대회를 부정하고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셈”이라고 강력히 성토했다. 이날 전법회관 3층 회의실에 자리한 94개혁 주체의 재가자들은 21년 전 팽팽했던 청년의 모습에서 귀밑서리를 넘어 백발이 완연한 초로(初老)의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94년 당시 3·29 구종법회와 4·10승려대회를 떠올리게 할 만큼 결기가 사뭇 비장했다.

출·재가를 막론한 이들의 분노는 무엇보다 이번 재심판결이 94년 개혁정신의 파괴라는 데 집약된다. 따라서 이들은 ‘개혁정신의 계승과 실천’을 내세우며 ‘재심판결 원천 무효’를 촉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94개혁 동참 스님들과 교단자정센터의 진상규명 주장이 관철되길 강력하게 희망한다.

의현 전 총무원장은 2013년 2월 5일 “체탈도첩 징계는 절차상 하자가 명백한 만큼 호계원법에서 정한 특별재심절차 등의 상당한 방법에 따라 재심절차를 진행해달라”는 내용으로 법규위원회에 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법규위는 이 심판청구를 받아들여 심리를 개시했고 문제가 되는 <법규위원회법>제2조 제②항의 ‘행정처분’ 규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중앙종회가 즉각 반발했다. 위원장 허운 스님에 대해 불신임 결의한다는 방침을 세우는 등 강경책이 나오자 허운 스님이 사퇴했다. 의현 스님도 이때 자신의 심판청구를 철회했다.

그로부터 2년 후 2015년 5월 21일 의현 스님은 재심호계원에 재심심판청구를 했고 재심호계원은 16일 의현 스님의 주장에 귀기울인 법률자문을 의뢰한 후 하룻만에 송부받아 다음날 18일 심리개시 및 공권정지 3년의 심판을 결정했다.

과연 어떻게 이렇게 일사천리로 속전속결할 수 있었을까? 심판청구 후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은 시간이다. 재심호계원이 독자적으로 의현 스님 건을 심판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로비나 압력 또는 지시를 받았는지 심판이 있기까지의 전과정에 대해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진상규명은 총무원장과 중앙종회의 협조 없이는 불가한 것이 종단 현실이다. 현재 입법 사법 행정 전반에 걸쳐 종단 집행부는 종도의 거센 비판과 저항에 직면해 있다. 특히 “4·10전국승려대회를 부정하고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셈”이라는 비난은 가볍게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의현 스님의 멸빈 해제는 현 집행부의 1994년 이전으로의 회귀이며, 과거 부패세력과의 결합이란 주장에서 회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종단 지도부가 이러한 비판이 제기될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란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그럼에도 의현 스님을 풀어준 배경은 뭘까? 궁금증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총무원과 중앙종회는 이번 재심파문을 얼렁뚱땅 비껴가려해선 안 될 것이다. 종단 사법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4·10승려대회로 이어지는 종단 정통성이 위협받는 지경이다. 철저한 진상규명만이 종헌종법질서를 바로 잡아 종단개혁을 견인할 수 있다는 교단자정센터의 주장을 적극 지지한다. 종단 지도부의 통 큰 결단이 요구된다.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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