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9년. 참으로 오랜 세월, 부처님의 혜명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인류사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부처님이 깨달아 열어주신 세상은 인류에게 주어진 값진 보배요, 커다란 축복이다.


지구화가 된 시대. 서구에서는 불교에 대해 눈을 뜨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등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사실 서구에선 멀게는 19세기부터 반 기독교적 풍토가 일었던 배경도 있었다.

알다시피 위선과 독선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던 그들 종교 문화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은 철학자 니체뿐 만이 아니었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 진화론을 들고 나온 생물학자 찰스 다윈 역시 그 사상의 근저에는 뿌리 깊은 아만(我慢)의 종교 문화에 대한 반동의 사상이 깔려 있었다. 20세기 후반. 본격 지식 기반 사회에 접어들면서, 유구한 세월 신화나 설화로 칠해졌거나 ‘미신적 사고’로 신비화를 시켰던 종교적 교설/가설들은 과학적 검증이라는 압박에 직면해야 했다.

예컨대 고고학 쪽에서는 성서에서 일어났던 중요 사건에 대해 그 증거가 없다고 들이댔다. 역사적 문헌을 검토하여 고증이 안 되는 부분들이 드러나곤 했다. 천체 물리학자 역시 성서 내용 중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점에 이의를 제기했다. 뿐인가. 이런 논쟁은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논증까지 유발시켰다. 이런 논증 싸움의 최전선은 물론 진화론과 현대 물리학이다. 진화론 대 지적 설계론(창조론) 싸움의 불길은 아직까지도 거세다.

하지만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에 대해 반증할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에 관한 논쟁도 끼어 있다. 마음은 실상 의식에 대한 문제다. 이런 문제 관련, 예컨대 마음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과학적으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남을 위한 기도가 과연 치유 효과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광범위한 실험 연구에서 이미 검증이 끝났다. (중보)기도는 특별한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다. 종교에서 ‘신화적’ 비유는 이젠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현 시대 과학주의에서 요구하는 논증 또는 사실적 증거에 부합하지 않은 종교적 교설/가설은 갈수록 그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달라이 라마도 현대 과학자들에게 과학이 발견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오랜 믿음 가운데 일부를 기꺼이 수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학자층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맹신주의자나 문자(근본)주의자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그 대안으로 불교가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듯하다. 하나 현대 과학자들이 보는 불교에 대한 안목이란 상당히 관념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불교계는 이런 첨단의 과학자들과 대화할 지적 토대가 마련돼 있는가. 생각건대 실상 아직은 기대 난망이다.

21세기, 불교계의 향후 숙제가 그려진다. 길게 보아 다양한 층의 과학자들을 포섭해야 되지 싶다. 그래야 청년들이 불교에 발을 들여놓는 문턱이 낮아질 수 있으리라. 다행히 최근 유식불교를 현대 심리학에 접목시키고, 불교적 명상치료를 대중화시키려는 노력들이 돋보인다. 전망의 일단이 어둡지만은 않아 보인다. ‘불교의 현대화’를 위한 학자 층이 두텁지 못하다는 인상이다. 학제 간 연구의 범위도 넓혀가야 할 일이다.

수행공동체 개념을 일반에까지 확대시킨 틱낫한 스님의 공헌은 결코 작지 않다. 미개척지에서 불교의 ‘사회화’를 위한 좋은 본보기다. 불교적 맥락에서 ‘공동체 의식’의 발달도 하나의 숙제다. 그리고 요즘 들어 우뚝 세우는 우리의 간화선에 대해서다. 과연 재가 불자를 대상으로 간화선 수행 권유가 바람직한가. 그게 얼마나 잘 들어 먹히는지에 대한 과학적 평가도 필요할 것이다. 작금에 대승 불교는 소승불교를 아우르는 시스템이어야 하지 않나.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깨달음의 목적 보다 실천적/실용적 의미가 먼저 강하게 부각돼야 좋겠다는 일말의 생각이다.

작정하고 깨달음을 얻으려다 깨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마음을 치유하는 종교로서의 기능이 우선돼야 포교에서도 유리할 것이다. 하나 제일로 시급한 문제는 일부 권승들의 편향된 사고와 도덕적 부패다. 그릇이 깨지면 거기엔 아무 것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인 ·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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