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다음 숲에서 사는/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시인은 선정에 들어 선의 세계를 형상화한 선시조로서의 결 곧은 오도의 무늬를 보여주면서 깨달음의 눈을 뜨게 해주고 있다”(김제현-열린시학 2013 가을호 고산문학대상 시조부문 심사평)

앞의 글은 오현 스님의 시조 ‘적멸의 즐거움’이다. 인용한 글은 시조시인인 김제현 경기대 명예교수가 2013년 열린시학 가을호 고산문학대상 시조부문 심사평 중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오현 스님 선시 해설 모음집 《이렇게 읽었다》가 책으로 출간됐다.

《이렇게 읽었다》는 중앙일간지 및 각종 문예지 등에 실린 오현 스님의 시 해설과 강평을 모은 것이다. 권성훈 고려대 연구교수가 엮어 냈다.

권 연구교수는 “스님의 같은 시를 읽는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사유하고 해석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나누고 싶어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책엔 같은 시를 놓고 저마다 다르게 감상하고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루라는 오늘/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볼 것 없다고/알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나는 살아 있지만/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성자는/아득한 하루살이 떼

“시인은 하루살이라는 유한자의 운명에서 인생무상이 아니라 ‘성자’의 형상을 발견한다. 그것은 일출과 일몰이라는 자연의 현상이 우주의 창조와 소멸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무시무종이라고 했던가. 이 ‘하루’라는 짧은 시간 속에 삼라만상의 생성과 소멸이 들어 있다는 깨달음은 찰나, 즉 하루가 영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다.”(고봉준 경희대 교수)

“모든 성자는 하루살이 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 진리의 말은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중생들, 그러나 자기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에만 전념을 하고 있는 중생들을 더욱 더 크게 끌어안는 말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미래의 부처로 끌어 올리고 있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반경훈 문학평론가)

“궁극적으로 성자란 무명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천년’의 시간 앞에서는 어떤 위대한 존재라도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은 것과 같다. ‘뜨는 해’와 ‘지는 해’를 다 보았다고 해도 그것은 억겁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적 응시일 뿐이다.”(신진숙 문학평론가)

오현 스님은 시 <아득한 성자>로 2007년 제19회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시에 대한 감상은 이렇듯 저마다 다르다. 편저자 권성훈씨는 이러한 의도로서 오현 스님의 시를 있는 그대로 자유로이 감상하라고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 책에서 시인 고은 소설가 우승미 문학평론가 이어령 씨, 현직 검찰총장 김진태 등 총 115명이 오현 스님의 시를 음미하고 있다.

권성훈 편저/도서출판 반디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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