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서 인생의 비밀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삶은 불완전하고, 완벽하게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학교만 졸업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일만 그만두면 행복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구조건을 충족해도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문제들이 튀어나오고,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기만 했습니다.

코엔 형제 감독 또한 <시리어스맨>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났던 아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직장문제도 무사히 마무리되고,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갑자기 검은 회오리바람이 몰려오더니 병원에서 불길한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문제의 연속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영화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성숙한 가치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인생은 그 속성 자체가 불완전한 것이니까 애써 채우려 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행복과 결핍을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결핍을 해결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삶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결핍과 별개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칸영화제 심사원상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비롯해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등 뛰어난 작품을 만든 감독입니다. 이번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일본, 2011) 또한 고레에다 감독 영화의 특징이 잘 나타난 영화였습니다. 일본의 흔한 가정풍경을 극적인 사건 없이 매우 담담하게 표현하면서, 한편으로는 삶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결핍’의 문제를 마주한 두 소년의 상반된 태도를 통해서 삶의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코이치(마에다 고키)는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 댁에 살았습니다. 외가가 있는 가고시마에는 사쿠라지마 활화산이 있어서 늘 화산재가 떨어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책상에 쌓인 재를 닦아야 하고, 널어놓은 빨래도 탈탈 털어야 하고, 밖에서 돌아올 때는 눈 오는 날처럼 옷도 가방도 털고 들어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가고시마 사람들은 재가 떨어지는 현실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농사꾼이 풍속(風速)을 체크하듯 그들은 침 바른 손가락을 통해 화산재의 양을 가늠하면서 불만 없이 살아갔습니다. 화산과 재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할아버지는 화산이 재를 떨어뜨리는 것은 에너지가 많다는 뜻이고, 살아있다는 의미라고까지 해석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곳에서 온 코이치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 재가 떨어지는 이곳에서 사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어.”라는 말을 자주했습니다. 재가 떨어지고, 화산이 폭발해서 사람들이 갑자기 죽을 지도 모르는 곳에 산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만은 동생과 헤어지고, 또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동생 류와 아빠는 현재 후쿠오카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생과 아빠가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코이치는 가족이라면 으레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은 불완전한 것이고, 반드시 개선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간절한 코이치의 바람은 엉뚱한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쿠라지마 활화산이 ‘펑’하고 폭발해서 가고시마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고, 그래서 아버지와 동생이 살고 있는 후쿠오카로 이사 가서 예전처럼 네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바람을 담아 활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벽에 붙여놓고 기도까지 했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것이지요.

반면에 동생 류(마에다 오시로)는 형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형이 결핍에 집중하면서 그걸 채우는데 삶을 소비하고 있다면 동생은 결핍된 삶도 완벽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사실 동생이 더욱 결핍을 느낄 환경이었습니다. 인디밴드의 단원으로 생활이 불규칙한 아버지는 제 역할을 못 하는 아버지입니다. 오히려 아들이 보호자로 보일 정도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후쿠오카에 남은 것도 사실은 아버지 혼자서는 살아갈 능력이 안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류의 양육비로 생활할 정도로 아버지는 경제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무능했습니다.

이런 아버지와 함께 사는 류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하지만 불편함이나 결여가 결코 행복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소년입니다. 밥이나 제대로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엄마가 동생을 걱정하는 다음 장면에서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아주 행복해 보이는 류의 일상이 나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집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누구에게나 쓸쓸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데 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특유의 밝은 고음으로 듣는 사람이 없어도 “다녀왔습니다.” 하면서 활기차게 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서 먹는 저녁 또한 굉장히 행복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었습니다. 밖에서 사들고 온 타코야키를 밥과 함께 먹었는데 그 음식들이 맛있게 보일 정도고, 혹시 이 소년은 혼자 먹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즐거운 표정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현재를 즐기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엄마가 챙겨주지 않아도 형이 없어도 조금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도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혼자 일어나 물을 챙겨 학교에 가는데, 학교 가기 전에 빵조각을 먹으면서 화단에 심어놓은 누에콩에 물을 주는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소년입니다.

류 역할을 맡은 소년은 코이치 역할을 맡은 소년과 형제인데, 동생을 맡은 소년의 에너지가 굉장히 밝았는데 이 역할에 잘 맞았습니다. 아이들 특유의 밝은 기운이 넘치는 소년이었고 그게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됐습니다. 아이스크림이나 타코야키를 먹는 모습에서도 아이들만의 몰입이 느껴지고, 전화를 받는 장면이라든지 서서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이 계속 몸을 움직이면서 말합니다. 이런 모습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류는 현재를 굉장히 즐기는 소년입니다. 그래서 소년은 형과 달리 옛날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엄마에 대한 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함께 사는 현재도 굉장히 즐기는 편입니다.

류는 어느 날 아버지에게 여행경비를 달라고 하면서 “엄마와 헤어져 아버지와 이렇게 사는 것이 불편한 것도 많지만 즐겁게 지내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엄마와 헤어져 사는 것이, 즉 결핍이 있지만 그것에 연연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현재를 즐긴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니까 결핍과 행복을 별개로 해석하고 살아간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결핍이 많은 환경인데도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결핍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형 코이치는 어느 날 신칸센 열차의 상·하행선이 서로 스쳐지나가는 곳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순간 소원을 말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고 기적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이나 개인보다는 세계를 선택했습니다.

인생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삶의 진실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생처럼 가족의 해체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재가 떨어지는 현실도 대부분의 가고시마 사람들처럼 일상으로 수용하면서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습니다. 결핍을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수용이 차라리 쉬운 방법이라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코이치가 여행을 통해 현실을 수용하고, 조금씩 성장한 이야기와 함께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서 보여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감독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코이치와 류의 일상의 단면들을 찍은 사진 몇 장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입 베어 먹은 아이스크림, 화장실 세면대에 담겨있는 수영복, 할아버지의 가루칸떡, 동생의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메주콩 싹, 자판기 밑 동전, 강아지 마블, 자전거 벨, 아버지의 CD 등.

기적은 바로 이런 일상이라는 것입니다. 류가 살아있는 느낌을 마음껏 표현하는 것처럼 삶에서 뭐 특별한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류가 일상을 항상 기쁨으로 채우려는 것처럼, 늘 기쁨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사진 속 풍경처럼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져주었습니다.

남전 스님의 ‘평상심이 곧 도’라는 말이 생각나는 결론이었습니다. 혜개 선사는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뜨고,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눈이 내리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좋은 시절이라네.’라고 평상심이 곧 도라는 깨달음을 선시로 표현하였는데, 이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이러한 선의 경지를 쉬운 화법으로 표현한 좋은 영화였습니다.

김은주 | 자유기고가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