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렇게 땔나무가 많이 있는데 어째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고, 냉방에서 잠을 자는 게요?”
“그야 그렇지만, 제 스승이 독립운동을 하다 왜놈들 한데 붙잡혀 지금 서대문 감옥의 추운 감방에서 떨고 계신데, 그 제자인 제가 어찌 따듯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춘성 스님(1891∼1977)은 만해 스님이 감옥에서 나오기 전에는 줄곧 냉방에서 자며 수행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조선독립의 서〉를 옥 밖으로 나오게한 장본인이 춘성 스님이었다. 만해 스님은 1919년 7월 10일 일체의 책을 참고하지 않고 옥중에서 이 글을 휴지에 써 똘똘 말아, 종이끈으로 만들어 옥 밖으로 보내는 자신의 옷에 감춰 춘성 스님에게 전달했다. 춘성 스님은 항일 불교청년운동을 수행하며, 만해 스님을 따르던 청년 승려 김상호에게 문건을 전달했다. 김상호는 상해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는 불교계 비밀루트를 이용 이 글을 상해 임시정부로 보냈고, 임시정부는 기관지 《독립신문》25호에 전문을 게재했다.

춘성 스님은 수행자로도 명불허전이다. 춘성 스님은 망월사에서 추운 겨울에도 삼매에 들어 몰입했고,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려 말년에는 손톱과 발톱이 썩기도 했다. 춘성 스님은 출가은사인 만해 스님에게 자주적인 독립의식을 배웠고, 만공 스님에게는 선의 정법을 전수받았다. 춘성 스님은 만공 스님 입적 후 수법제자로 공인됐다.

춘성 스님이 통금시간을 넘겨 밤길을 가고 있었다. 방범순찰을 하던 경찰이 물었다.
“누구요?”
“중대장이다!”
“아니 스님아니시오?”
“그래 내가 중의 대장이지! 맞지!”

춘성 스님은 선지식이었고, 큰 스님이었다. 근현대불교의 격랑의 중심지에서 승려로 살았고, 수행자로 살았다. 묵묵히 길을 걷던 자유인이었다. 만해 스님의 상좌로 살았고, 용성 스님과 함께 《화엄경》 사상을 웅변하던 화엄법사로 살았다. 덕숭산 끝자락에서 장좌불와를 고집했고, 만공 스님 회상에선 간화선 수행자로, 망월사에서는 수좌를 지도하던 매서운 어른으로 살았다. 저잣거리에서 법문할 때는 육두문자의 원색적인 말로 설했고,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던 무소유의 실천자였다.

《춘성-무애도인 삶의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불교를 중점 연구하는 김광식 부천대 교수가 정리한 춘성 스님의 행장을 소문과 전설, 신비, 과장 등을 걷어내고 문헌과 증언, 일화로 복원 시킨 책이다.

김광식은 2년간 춘성 스님에 대한 문헌자료 검토와 분석을 수행하고, 춘성 스님과 인연있는 스님, 재가자를 찾아 증언을 채록해 담았다. 이 작업을 토대로 ‘춘성 일대기’와 ‘내가 만난 춘성’, ‘일화로 만나는 춘성’ 등 3부로 나눠 춘성 스님의 행장을 정리했다.

김광식/새싹/15,000원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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