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헤치지 말고 끌어담아야
 좋은 결과를 위한 시련으로
 여겨 끝을 승화시켜야


한 단체의 지도자를 뽑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의 총장을 뽑는 일도 그렇다. 그 이유는 많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고, 또 전통을 이어 새 시대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구성하는 인적 자원으로 크게 셋을 들 수 있는데, 첫째는 동문이고, 둘째는 교수이고, 셋째는 재학생과 학부모이다. 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총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총장은 이 세 구성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승화하여 그 대학 설립 정신과 이념을 실현시켜야 한다.

동국대학교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그 대학을 세운 종단은 물론 그 대학의 동문, 교수, 학생 등의 의견들이 밖으로 많이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입장은 다르지만, 그리고 방법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동국대를 위하는 마음이 기본에 깔려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동국대학 건학이념 자체를 흔들거나, 개인의 영광이나 이익을 위해서 그랬다면, 지탄받아 마땅하다. 추호라도 그런 점이 있었다면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자. 처음에는 총장 선출로 시시비비가 일더니만, 이제는 이사장 문제로 사안이 번져가고 있다. 그런데 사안이 얽혀있을수록 원칙적인 사고로 되돌아가서 현상적인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좋은 총장을 모시자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좋은 총장이란 어떤 총장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대학을 설립할 당시부터 현재까지 내려오는 소위 건학이념을 잘 계승 발전시켜, 좋은 대학을 만드는 사람이 좋은 총장이다. 이런 총장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무엇보다도 동국대학 자체가 목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동국대학이 스쳐 지나가는 정거장이 되어서는 안 되고, 동국대학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덕목이 기본이 되고, 그 위에 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런 기본 덕목을 갖춘 인물은 역시 동국대 동문 속에 있고, 또 동국대학의 교수 속에 있다. 동국대학은 신흥 사립대학이 아니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갖추고 있는 대한민국 굴지의 대학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 덕목을 갖춘 인재들이 동국대학 공동체 속에 적잖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신문에 동국대 총장은 동대 교수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논설을 써서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면 지난 이사장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온 이사회가 과연, 좋은 총장 모시기에 성공을 했느냐? 거두절미하고 실패했다. 아무도 못 뽑고 총장이 없는 상태에서 2015학년도 신입생을 맞이했다. 아무개는 총장 후보가 못 된다는 이야기만 했지, 대안을 내지도 못했다. 비판은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은 공동체를 책임지는 사람이 어른이 할 일은 아니다.

유력한 총장 후보의 한 사람의 표절만 문제 삼아 학사일정을 파행 지경 까지 몰아가고 있다. 정 그 사람이 깜이 못되면 다른 사람을 뽑으면 된다. 총장 임면권은 절대적으로 이사회에 있고, 이사장은 이런 일련의 절차를 진행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전임 이사장은 결국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새 이사장으로 일면스님이 뽑혔으니, 이제라도 총장 인선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새로 선출된 일면 이사장은 다년간의 교육 경험이 있다. 중고등학교 합쳐 모두 세 개를 거느린 학교법인 광동학원 이사장으로, 이 세 학교를 그 지역에서 가장 인기는 학교로 만들었다. 그 학교에 배정 받기를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이 학수고대한다. 또 인간의 장기기증을 독려하는 복지법인을 만들어 불교의 자비정신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있다. 부처님의 이름으로 생명 존중을 실천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결정이 남아 있다. 이제 까지 총장 선출을 둘러싸고 저마다 충심에서 학교발전을 위해 의견을 내고 행동을 한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방법이나 절차에 서로 견해를 달리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파헤치지 말고 끌어 담아야 한다. 싸울 만큼 싸웠다. 학교와 불교를 위하는 충심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이사장을 중심으로 좋은 총장 모시는 일에 매진하면, 그간의 의견 충돌도 모두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시련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낸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의 기억 그렇게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끝은 시작을 새롭게 하고, 시작은 끝을 승화시킨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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