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는 당나라 영가현각(永嘉玄覺)선사(643~713)가 서기 705년 경 찬술한 선서(禪書)다. 현각 스님은 달마 이후 중국 남종선(南宗禪)의 개창자인 6조 혜능(慧能 : 638~713)에게서 선요(禪要)를 듣고 하룻밤에 증오(證悟)를 얻었다고 해서 일숙각(一宿覺)이라고도 불린다. 그가 얻은 대오(大悟)의 경지를 249구 814자의 고시체(古詩體)로 읊은 일종의 시집이 증도가다. 부처님의 영원불변한 진리를 깨닫고 체득할 수 있는 정수를 노래로 읊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성을 갖고 있으므로 누구나 참선수행을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다는 내용을 기술한 것이다.

성철 스님도 증도가를 접한 후 출가를 결심했을 정도로 우리 불교에서는 매우 유명한 책으로 많은 해설서가 나와 있다. 그 가운데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이 쓴 증도가 해설서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가 우리나라에는 많이 유통됐다. 고려 무신정권 때 강화도에서 찍은 목판본은 현재 보물 758호로 지정돼 삼성출판박물관(관장 김종규)에 소장돼 있다. 여말선초의 문인 최이는 이 책의 끝에 ‘참선을 배우려는 사람은 누구나 이 책으로 입문하고 높은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도 전래가 끊겼으니 각공(刻工)을 모아 주자본(鑄字本)을 바탕으로 다시 판각해 길이 전하게 한다. 때는 기해년(1239) 9월 상순’이라고 적었다.

이 후기의 내용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의 존재를 밝힌 매우 중요한 기사다. 이 후기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즉 ‘직지심체요절’(1377)보다 138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55)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금속활자가 우리에게 있었다는 매우 자랑스러운 구체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실물이 없어서 안타까워한 것은 비단 학자들만이 아닐 것이다. 

 2010년 9월 사립미술관인 서울 다보성고미술관(관장 김종춘)이 고려시대 금속활자인 증도가자 12점을 확인했다는 남권희 경북대 교수의 주장이 보도됐다. 놀라움과 기쁨이 교체했다. 이상주 중원대 교수는 서법적(書法的) 분석을 통해 남 교수의 증도가자 진품 주장을 반박했다. 조형진 강남대 교수는 활자 형태와 부식 정도, 출처나 유통경위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위작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2010년 공개 당시 남 교수와 김종춘 관장은 이 글자가 식민지시대 개성에서 나와 일본에 유출됐다가 10여 년 전 다시 들어왔다고 했다. 증도가자는 2011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신청이 문화재위원회에서 부결되면서 일단락됐다.

그런데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의 의뢰를 받아 용역을 진행한 경북대 산학협력단(단장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은 1377년에 만들어진 ‘직지심체요절’보다 적어도 138년 이상 앞선다는 ‘증도가자’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진품이라는 결과보고서를 냈다. “증도가자 14점에서 채취한 먹의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이 먹들이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전문가 32명이 참여해 조사 대상 109개 활자 중 62점이 증도가자, 나머지 47점은 고려시대 주조 활자인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강순형 소장은 “남 교수가 연구 용역에 들어가는 데 대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제척(배제할)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금속활자를 가장 폭넓게 연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지난해 입찰 당시 그의 연구팀 안이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다”고 했다. 남 교수는 “한국서지학회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조사를 맡아야 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국립문화재연구소 측이 조사할 시간이 6개월밖에 안 된다고 했다. 100개가 넘는 활자에 대한 조사를 그 기간 안에 마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연구책임자를 맡았다”고 밝혔다.

용역연구팀은 모두 109개의 ‘증도가자’를 조사하면서 탄소연대 측정이 가능한 먹이 묻은 15개 모두에 묻은 먹을 긁어 태웠다. 이 때문에 추가로 탄소연대 측정을 할 수 없게 됐다고 한다.

지난 12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라는 주장이 제기된 ‘증도가자’에 대해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위원회(위원장 박문열 청주대 교수)가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 여부는 민감해서 조사단 규모를 통상보다 3배 이상 많은 10여 명으로 구성해 문화재 지정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 문화재위원 임기만료인 4월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은 “구리가 주성분인 청동 활자의 연대측정은 불가능하다. 활자에 묻은 먹은 탄소연대측정을 할 수 있지만 그 양이 너무 적어서 이마저도 어렵다. ‘증도가자’의 연대는 과학으로는 풀 수 없다”고 했다. 이번 연구용역에 포함되지 않은 활자의 주조방식, 조판방식도 규명돼야 할 문제다. 이에 소장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격을 높이는 일인데 사사로운 감정으로 시간만 허비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증도가자 공개 초반에 실수와 오해가 있었지만,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나왔는데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도 “세계 문명사를 바꾸는 일이기에 조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편파적인 시선으로 우리 것을 죽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이 칼럼은 우리 문화재가 보다 객관적인 재조명을 통해 세계의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공익적 목적으로 일부 전문가와 관계자들의 의견이나 우려를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과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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