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규 불감증 극에 달했다"

범법 또는 범계 승려에 대한 세속법정과 조계종단의 판결이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어 주목된다.

세속 법정은 불교경전을 인용하며 출가 승려의 잘못을 준엄히 질타하고 있는데 반해 조계종단의 문책은 그야말로 솜방망이 수준이다. 아예 문제삼지 않는 경우도 있어 청규불감증이 극에 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창원지방법원 제3형사부 권창영 재판장은 26일 자신의 승용차로 신도를 폭행해 1심에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진주 연화사 주지 혜만스님의 항소를 기각 결정했다.

 범망경 인용해 혜만스님 질책

항소심에서 권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출가수행자의 계율 준수 여부도 양형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판결문은 “출가한 승려가 준수해야 할 구족계에는 ‘시비를 끝내고 다시 일으키지 말라’, ‘진심을 내어 남을 때리지 말라’고 했고, 범망경 48경계에도 ‘잠시라도 보리심을 잊지 말라’는 계율이 있다”며 “피고는 평생 구족계를 준수하기로 서약한 승려임에도 계율을 어기고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행위는 수도자 개인의 지위에서도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적시했다.

 수좌 대표 지낸 H스님에겐 "참선하라"

지난 해 8월 14일 광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 장용기)도 20대 여신도를 성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H스님에게 “참선 수행하라”고 질타하고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전국선원수좌회 원로이자 교구본사 선원장을 지낸 선승이 행동거지에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여신도를 상대로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다”며 “종교적인 방법으로 참선으로 수양하라”고 권고하고 보호관찰 및 성폭력예방프로그램 40시간도 명령했다. H스님은 2012년 8월 화엄사 안 처소에서 차를 마시자며 피해 여신도를 부른 뒤 수맥탐사봉으로 신체를 진단하다 가슴을 만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묘법연화경 비유 "황금식 뇌물식 추구" 질타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말사 주지 품신 청탁 대가로 2명의 스님에게 8천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B스님. 그리고 금품을 건넨 말사 주지 2명. 2009년 12월 항소심을 맡은 당시 대전지방법원 형사3부 김재환 부장판사는 《법화경》을 인용해 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김 부장판사는 “불교경전인 묘법연화경에는 법희(法喜)와 선열(禪悅)로 음식을 삼아 다시 다른 생각이 전혀 없으며 여인은 원래부터 있지 않으니 한가지 악한 길도 없다고 하고 있다”고 인용하며 “피고인들은 법희식(法喜食)과 선열식(禪悅食)이 아닌 황금식(黃金食), 뇌물식(賂物食)을 추구, 스스로 종교인인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했다”고 질타했다. 법희식은 불법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닦아 선근을 자라게 하는 것을 음식에 비유한 말이고, 선열식은 선정의 기쁨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 지혜로움을 증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세속법정이 경전을 인용하며 엄히 꾸짖고 준엄한 심판을 내리는 것에 반해 그렇다면 조계종에서는 어떻게 이들을 징계했을까?

 대부분 문서견책 아니면 아예 조사도 안해

진주 연화사 주지 혜만스님은 똑같은 사안을 놓고 올해 1월 22일 재심호계원 87차 심판부에서 이미 문서견책의 처분을 받았다. 재심호계원에서의 문서견책은 무죄에 다름 아니다.

20대 여신도를 성추행해 사회적 지탄을 받은 H스님에 대해선 아예 호법부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사건이 발발한 2012년 11월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등 교계 14개 단체가 호법부의 엄중한 조사 및 징계를 촉구했지만 유야무야 넘어갔다.

말사 주지들로부터 인사청탁 금품을 수수한 B스님에 대해선 오히려 조계종 총무원이 ‘불구속 탄원’을 제기했다. 2009년 7월 조계종 총무원은 검찰에 불구속이 종단의 뜻이라며 탄원을 넣었던 것이다. 하지만 B스님은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됐고 종단에서도 징계를 받았다. 이유는 말사 주지들로부터의 금품수수가 아니라 총무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괘씸죄 때문.

이들 사안에 하나 더 추가해 말한다면 부산 보광사 황운스님의 징계건도 마찬가지다. 황운스님은 ‘성매매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012년 10월 1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벌금 1백만원이 선고됐고 이 징계는 고법을 거쳐 2013년 6월 28일 대법원에서 1심 판결 그대로 확정됐다. 그러나 대법원 선고가 있기 8일 전 6월 20일 조계종 82차 재심심판부는 황운스님에 대해 문서견책의 결정을 내렸다. 초심에서의 공권정지 10년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극과 극의 판결을 보여주고 있는 세속법정과 조계종단. 누가 잘못된 심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본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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