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조사상연구원 제24차 국내학술대회

오경후 박사, “법통문제, 불교재건 당대 입장 고려해야”

보조선과 임제선은 한국선불교의 큰 줄기이다. 두 선사상은 고려 말 조선 초 명암이 엇갈린다. 지눌 스님이 입적한 후 수선사를 중심으로 보조선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지속됐지만, 고려 말 임제선이 전래되면서 상대적으로 빛을 잃었다. 그렇다면 임제선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보조선은 고려 말 조선 초 불교계에 어떻게 수용되어 명맥을 이어갔으며, 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보조사상연구원(원장 법산 스님)이 10월 18일 서울 법련사 대웅전에서 ‘여말선초 보조선의 분화와 확산’을 주제로 개최한 ‘제24차 국내학술대회’는 그런 의문에 대해 답해보는 자리였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한국 간화선의 정통성 문제 - 한국 간화선은 보조선인가, 임제선인가’를 주제 발표한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법통과 법맥의 주도권 장악이라는 정치사적인 맥락에서 보지 않는다면 한국의 간화선은 ‘보조선이자 임제선’”이라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고 교수는 “한국의 선법은 남종선의 임제종 양기파 일변도로 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고려 중기에 자생한 보조선(普照禪)과 고려 후기에 재전래한 임제선(臨濟禪)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가 늘 문제가 되어 왔다”는데 주목하고, 보조선과 임제선의 관계와 한국 선법의 주류를 밝히는데 주력했다.

고 교수가 먼저 주목한 것은 “조사선의 흐름을 계승해온 임제선과 남종선 사굴산문 선법을 계승한 보조선은 그 법통과 법맥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원오 극근(圜悟 克勤)과 대혜 종고(大慧 宗杲)가 종래 조사선의 ‘반조’(返照) 수행법을 간화선의 ‘간화’(看話) 수행법으로 정비하자 조사선법으로 수행해온 지눌 역시 간화선법과 주체적으로 접목했다”고 밝힌 고 교수는 “지눌은 대혜의 간화선법을 접목하면서도 종래의 조사선법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간화선풍은 그의 제자인 진각 혜심(慧諶)에 의해 본격화되었다”는 것이 고 교수의 견해다.

고려 말 태고(太古) 스님과 나옹(懶翁) 스님 등이 다시 전래한 임제선법이 돈오돈수에 입각한 간화결택의 수행법과 사교입선(捨敎入禪)의 사상체계를 강조한 것에 대해서도 고 교수는 “지눌이 선정일치(禪淨一致)를 추구한 것이나 태고가 염불선(念佛禪)을 주장한 것처럼 시대상황과 역사인식이 투영된 것일 뿐 그들 선사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학계에서 보조선과 임제선이 근원부터 다른 것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고 교수는 “청허 휴정 이후 편양 언기 등의 임제법통 정립이라는 정통성 문제를 가미시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임제선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기치로 ‘주인공’을 강조해온 선사상이듯이 보조선 역시 고려 중기의 ‘주인공’으로서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는 ‘마음의 토대’ 혹은 ‘사유의 입각지’로서의 ‘주체성’을 강조한 선사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한 고 교수는 “법통과 법맥의 주도권 장악이라는 정치사적인 맥락에서 보지 않는다면 한국의 간화선은 ‘보조선이자 임제선’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보조선의 장점이 임제선의 가풍 속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오경후 박사(동국대)는 주제발표 ‘여말선초 보조선의 법통과 법맥’을 통해 ‘한국 선종사의 법통과 종조 문제’를 살폈다.

“법통에 대한 정립은 조선 후기 불교계의 정체성과 그 기초를 확립했던 청허 휴정의 제자들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고 전제한 오 박사는 “고려 말 조선 초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환암 혼수(幻菴 混修), 구곡 각운(龜谷 覺雲), 벽계 정심(碧溪 淨心)의 법통을 태고 보우 계보로 편입시켜 임제선의 수용이 본격화된 고려 말 조선 초의 불교사적 사실을 임의대로 재구성했다”고 주장했다. “임제종의 순수성 강조를 전제로 보조 지눌을 임제종과 상관이 없는 별종으로, 나옹 혜근을 평산 처림의 분파로 처리했다”는 것. 하지만 “논란의 핵심인 세 인물의 법통은 나옹과 태고의 비문에 공통적으로 실려 있어 표면적으로는 사승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게 오 박사의 지적이다.

오 박사는 이어 “법통에 대한 논의는 종조 문제와 결부되어 1930·40년대에 재점화되었고, 이후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했음에도 큰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해 “법통문제가 중요시되었던 각 시대 불교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통문제는 순수한 학문적 측면에서만 평가하고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전제한 오 박사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는 우리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해야하는 시기였다”면서 “당시 불교계를 주도했던 인물들의 중요한 소임은 지난한 폐허의 시기를 극복하고 불교를 재건해야 한다는 사명이었다”고 주장했다.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 불교계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되, 과거보다는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의 불교재건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오 박사의 설명이다.

신규탁 연세대 교수는 ‘불교 이해에 나타나는 보조의 모순과 종합성 – 염불사상을 중심으로’에서 염불 또는 정토신앙에 대한 보조 지눌의 수용 태도를 살폈다.

“보조 지눌에게는 염불선에 대한 수용의 면도 보이고, 폄하의 면도 보인다”고 설명한 신 교수는 고 심재룡 교수는 뒷사람들에 의해 삽입된 것으로 보았지만 자신은 “‘모순의 노출과 종합’이라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지눌은 과거의 사상을 시간적인 흐름 속에서 이해하기보다,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 사상들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한다”고 설명한 신 교수는 “이런 방식의 수용이 논리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사상의 현재성에 주목하고 자신의 철학적 문제로 수용하고 고민하는 지눌의 자세는 한국불교학계에 많은 교훈을 남긴다”고 지적했다.

박해당 서울과기대 교수는 주제발표 ‘여말 선초 거사들의 보조선 인식과 계승’을 통해 고려 말 조선 초 거사들이 보조선을 어떻게 인식하고 계승했는지 살폈다.

박 교수는 이 주제발표에서 고려 말 조선 초 거사들에게 ‘보조선’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선풍에 대한 인식이 없었으며, 이들 중에서 불교적 의미의 ‘거사’라고 할 만한 사람은 매우 드물어 보조선 계승의 문제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창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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