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라는 기독교, 무욕과 무아의 진리를 가르치는 불교, 이 두 종교가 지금껏 한국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중략) 대의(大義)에 관심을 갖기 보다 자기 교회, 자기 사찰의 성장에만 몰두해 온 것이 사실이다.”

23일 저녁 신사동 불교평론 세미나실. 경희대 비폭력연구소(소장·허우성 교수)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10월
▲ 발제자 오강남 박사. <사진제공=미디어붓다>
열린논단의 주제는 ‘세월호 앞에서 종교란 무엇인가?’다.

오강남 박사(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는 이날 '세월호 앞에서 종교를 다시 생각해 본다'란 제목의 발제에서 “2009년 영국 BBC 방송국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이 OECD 회원국 중 욕망지수가 1등이라고 한다”고 운을 뗀 후 이렇게 한국종교의 허상을 꼬집었다.

오 박사는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가 절대 빈곤이다. 따라서 불교와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손을 잡아야 한다고 본다”고 전제하고 “그럼에도 기독교와 불교는 가진 자, 힘있는 자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옹호하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부대 이익을 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 박사는 이러한 폐단이 교육에도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이 지덕체(智德體)에 목표가 있다고 봤을 때 한국의 교육은 지(智)보다 지(知)가 우선되고 덕과 체는 아예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학교는 오로지 입시나 입사를 위한 시험 예비학교 같은 실정이라는 것이다. 오 박사는 “이런 문제는 교육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종교계도 힘을 합해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본다”고 했다.

비인간화의 문제 중 또 다른 요인으로 남북분단을 꼽았다. 오 박사는 “북한의 인권탄압은 논외로 하더라도, 남한 사회에서 기득권의 이익에 저해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을 ‘종북’이라 낙인찍어 매장한다”면서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남북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불교 기독교는 이 일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 박사는 세월호를 침몰시킨 암초가 결국 비인간화의 장본인, 즉 탐욕이라고 지적하고 “이런 암초를 제거하는데 앞장서야 할 책임이 불교, 기독교의 어깨 위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세월호 참사가 빚어졌을 때 종교계의 반응에 대해서도 고찰했다. 그는 “기독교인이라면 자연히 신을 찾게 된다”면서 “신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는가? 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침묵하시는가? 신이 정말 계시는가? 등의 물음을 묻게 된다”고 했다. 그는 《출애굽기》 《탈출기》 등에 나오는 신이 ‘부족신관(部族神觀)’에 의한 신이라면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포로로 잡혀 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신은 온 세상을 함께 다스리는 우주적 신, 즉 ‘보편신관(普遍神觀)’이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또 오랜 세월이 흘러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6백만 명이 생명을 잃게 되는 비극 앞에서 세상이 가지고 있던 ‘신관’이 다시 도전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한국 기독교도 근본적으로 고대 유대교의 부족신관을 그대로 채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우리가 마음을 다해 받들 수 있는 신은 어떤 신이어야 할까 진지하게 검토하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습적인 신관, 초자연적 신으로서의 신관을 심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불교평론 세미나실에서 오강남 교수가 '세월호 앞에서 종교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사진제공=미디어붓다>

불교의 경우에서는 카르마, 즉 업(業)의 문제로 살폈다. 오 박사는 “업 사상이 심층적인 뜻이 있고, 이를 영적으로나 더욱 복잡한 이론으로 풀어내는 길이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 업사상이 과연 세월호에 희생된 어린 학생들의 비극을 설명하는데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종교는 일단 인과응보와 같은 율법주의적 태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박사는 불교와 기독교는 모두 표층에서 심층으로 심화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표층과 심층의 차이에 대해 첫째, 표층은 지금의 나, 이기적인 나, 탐진치로 찌든 나, 죄인인 나를 위하여 애쓰는 것이라면 심층은 이런 나를 부인하거나 극복하고 비울 때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나, 큰 나라고 설명했다.

둘째, 표층종교가 ‘무조건적 믿음’을 강요한다면, 심층종교는 ‘이해’나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표층종교는 자기 종교에서 가르치는 교리나 율법 조항을 무조건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는 반면 심층종교는 선입견, 편견, 고정관념을 벗고 새로운 눈뜸의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교의 경우 심층불교란 ‘깨치신 분’이라는 뜻의 붓다가 가르치는 ‘깨침을 위한 가르침’을 앞세우는 종교라는 것. 즉 문자나 전통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깨쳐서 해탈의 경험을 하라는 종교다.

셋째, 표층종교가 절대자와 나를 분리된 두 개의 독립된 개체로 보는데 반해, 심층종교는 절대자를 신이라 상징적으로 의인화했을 경우 그 신이 내 속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 즉 그 신과 나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힌두교에선 이를 ‘범아일여(梵我一如)’라 하고 동학에서는 ‘인내천(人乃天)’이라 한다는 것이다.

넷째, 표층종교는 경전의 표층적인 뜻에 매달리는 것이라면 심층종교는 경전의 속내, 더 깊은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종교다. 심층종교가 문자를 배격하는 것은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 우주만물이 하나라는 체험 등은 말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섯째, 표층종교는 자기 종교만이 오로지 유일한 진리라고 하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심층종교는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한다.

오 박사는 “이런 다섯 가지 심층적 요소를 갖춘 종교를 영성적 종교라 부르고 싶다”면서 “한국종교가 표층에서 심층으로 심화해 진정으로 영적 길잡이가 되도록 하는데 불교와 기독교가 함께 노력하는 것이 21세기 두 종교에 지워진 책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오 박사는 “한국종교 전체가 침몰하는 일이 없으려면 불교와 기독교가 손잡고 이 시대에 걸맞는 삶의 지침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김종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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