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부처님오신날을 맞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서 경제적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높아, 행여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들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날만이라도 진정한 부처님 오신 뜻을 되새기고 정성어린 등을 다는 일이 필요합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비유에서처럼 우리가 밝히는 등불은 무명(無名)의 어두움을 내쫓는다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치 앞의 외형적 위기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두려워해야 할 일은 내면의 문제입니다.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과 분노의 불길은 끝내 스스로를 태우고, 남을 파멸시키는 법입니다. 불교의 횃불이 들려지기 이전에 인류는 그 어두움 속을 방황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더구나 불교의 위대한 진리가 해동에 전래되면서 그 찬연한 문화의 꽃은 한반도를 성숙시킨 핵심 사상이 되었습니다.

국난 때마다, 도의가 땅에 떨어졌을 때마다, 오히려 불교는 형형한 빛을 발산하였습니다. 몽고의 병란 때 고려대장경을 조성하고, 임란의 위기 속에 나라를 구한 일등은 모두 불의에 저항한 불교의 의지였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결국 불교적 예지의 빛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 주변에는 불교의 진리를 외면하는 중생들이 있고, 또 불교를 그릇되게 믿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정법의 현양이라고 확신합니다. 가난한 이에게는 보시의 미덕을 베풀고 게으른 이에게는 정진의 철퇴를 내리는 방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벌써 도심은 휘황찬란한 연등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불빛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줄 압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방황하는 가장, 실의에 잠긴 청년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불교로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다종교시대로 접어들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종교 간의 각축들이 있습니다. 또 일방적으로 상대 종교를 비난하는 어리석은 일들도 자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교화해야 할 대상은 결코 상대방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의 선한 의지를 말살시키는 배금주의 이기주의 패권주의를 경계해야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그 지속적 교화의 길을 완수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이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각축장이 되지 않고, 대립과 편견의 투쟁마당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초파일에 밝히는 등이 보살의 기개를 드높이는 서원의 등이기를 바랍니다. 불자들의 가정마다 편안함이 깃들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법진 스님 |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원장, dharma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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