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정치와 무관하며 또 무관하려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그럴까? 윤세원 인천전문대 교수는 ‘연기론적 사유와 정치적 사유의 상호보완성’이란 논문을 통해, 그러한 견해를 단호히 부정한다. 오히려 “불교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이를 통해 불교와 정치는 각각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정치와 불교는 본질적으로 무관계하다는 인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하지만 불교의 인간관[무아]과 그에서 연유되는 인간의 가치[붓다가 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도덕적 기초[계율]는 정치사상을 살찌우는 보물창고라고 본다. 또한 이를 기초로 불교의 정치적 사유와 이상을 해명하거나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불교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보는 인식은 불교에 대한 부당한 오해일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곡해인 셈이다.
이는 ‘불교에는 정치 윤리가 없다’는 막스 베버 견해와 ‘초기 불교는 왕자(王者) 계급을 위한 종교였다’는 일부 사학자의 주장, 또 ‘세속적 권력과 타협해 국왕과 착취계급국가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사상적 도구’라는 막시스트들의 왜곡이자 불교사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치를 부정, 부패, 타락, 무능 등 ‘반정치 행위’이자 ‘정치 파괴 행위’에만 주목한 탓이다.
이런 연유에서 ‘정치적 이상’과 ‘도덕적 목적’은 정치와 종교의 근원적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로, 이 둘은 윤리적인 영역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 역시 정치사상의 새로운 통로를 제시할 가능성을 충분히 답보하고 있으며, 국가를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만들어져 이루어졌다는『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사상은 주목해야 할 ‘국가계약이론’이라 할 수 있다.『기세인본경』에서 ‘위대한 선출자’라고 지칭되는 왕은 사회의 무정부적인 상황이 종식되기를 원하는 인민들의 요구를 수렴하였고, 인민들은 그를 그들의 지도자로 선출한 것이다.
정치적 이상과 관련하여 이 경전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통치자의 직무 즉, 정의의 원리를 효과적으로 적용토록 하는 의미의 엄격한 도덕률에 대한 강조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정의 원리가 강화되어 질서 있고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정치는 내재적으로 종교성을 지니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종교와 정치는 가치의 실현 과정에서 서로간의 관계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오히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불교는 현대 정치학의 취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치사상 부분에서는 막다른 골목에 이른 인류의 정신적 토대에 새로운 차원의 대안제시가 가능하다고 생각되고, 현대정치 이론에서 거의 실종상태에 있는 정치권력의 존재이유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통치자질에 대한 새롭고 의미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기원과 통치자 출현에 대한 불교적 이론은 오늘날의 이론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즉, 불교가 한 사회의 근본적인 통치원리를 뜻하는 도덕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참된 종교는 사회의 토대이며, 모든 참된 시민정부가 의지하는 근거이고, 사회와 시민정부 양자 모두에 대한 제재(sanction)이다.”, “만약 종교가 인간의 필수적인 선으로 유지되어진다면, 다른 기준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을 것”라고 한 인도 불교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암베드카(Ambedkar)의 주장이 중요한 정치적 함의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종교는 양면성을 지닌다. 종교적 표현이나 종교의 기능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훈련된 심성은 장기적인 측면에서 한 사회를 유지 혹은 변화시키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태도가 된다. 반면에 정치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가 충돌할 경우 종교는 권력의 정당성 기반을 허무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정치와 종교는 근본적으로 상호보완적이면서 동시에 긴장관계라는 속성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의 정치참여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걸까? 초기경전에 근거하자면, 이 문제는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즉, 승가의 경우 공동체의 차원에서건 개인적 차원에서건 직접적인 권력의 소유나 현실적인 정치참여는 금지돼야하며 단지 정치적 이상을 일깨우고 교육하는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한다. 반면 재가자의 경우, 권력소유나 현실참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으로 훈련된 심성은 한 사회를 유지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며, 불교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불자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리=편집실
참조=윤세원 인천전문대 교수의 ‘연기론적 사유와 정치적 사유의 상호보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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