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송담 큰스님을 잘 모른다. ‘남진제, 북송담’라고 하는 말로 인해 막연히 선지식이 계시다는 사실만 소문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남진제’로 인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고 하는 표현이 맞겠다. 그것은 ‘남진제’ 스님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진제 스님이 현재 종정 소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내가 들었거나 아는 이야기를 다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를 분간하지 못하는 스님이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은 이전에 <불교저널> 칼럼을 통해 종정예경실에 쓴 소리를 하는 것으로 대신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사실 나는 ‘남진제’ 스님이 그러니 ‘북송담’ 스님인들 뭐 그리 다르겠느냐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북송담’ 스님은 총무원장 도박의혹이 <신동아>에 실렸을 때도, 적광 스님이 조계종 청사로 끌려가 피 터지게 두들겨 맞았을 때도 ‘남진제’ 스님과 마찬가지로 침묵했고, 종단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종단의 공식적인 소임을 맡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조계종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최고 어른의 침묵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런 송담 스님이 이번에 ‘탈종’이라는 메가톤급 폭탄을 한 방 터트렸다. 언론에서는 그 이유로 용주사 주지 선거에 대한 불만과 법인관리법 강제 시행을 언급하면서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나온 일련의 보도 가운데 <불교닷컴>의 기사에 주목한다.

“평소 송담 스님은 ‘더 이상 조계종에 희망이 없다’는 말을 자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담 스님은 (중략) 특히 공부인(工夫人)이 절집의 ‘허명(虛名)’에 집착하는 것을 탐탁찮게 여겨 왔고, 돈으로 자리를 사고 파는 현실에 크게 실망해 왔다는 게 수좌 스님들의 전언이다.”
송담 큰스님은 조계종의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비록 용주사 주지 선출과 법인관리법을 계기로 표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용주사 주지 선출 배경과 관련하여서는 ‘희망 없음’과 직접적 연관이 있고, 법인관리법 또한 조계종의 기득권 세력들이 세력을 확대하려는 술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어제 한 일간지의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해 “스님들의 선거에 ‘돈봉투’가 오가고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주지 자리를 사고파는 솜씨가 세속 정치보다 더하다.”고 비아냥거렸다.

조계종이 온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논설위원이 언급한 이런 일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기 때문에 요즘 이 정도로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 조계종의 이런 현실로 인해 큰스님이 탈종이라는 극약처방을 했다면 우리는 이제 희망을 말할 수 있다.

사실 종단정치와 무관한 대다수의 스님들은 종단의 현실에 대해 우려를 많이 한다. 권력과 금력의 횡포와 계율을 무시하는 풍조가 도를 지나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은 출가자의 급감으로 인해 승려대회조차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종정 스님까지 사판들의 등에 업혀 있는 상황에서 누가 과연 정화의 기치를 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지금 이 시각 전국선원수좌회 스님들이 총무원장 자승 스님을 만난 후 용화사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인 수좌 스님들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사태해결을 하려는지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명백하다.

‘더 이상 조계종에 희망이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송담 큰스님이 이번 일을 계기로 제2 정화의 기치를 높이 들 것을 바라는 것은 나 한 사람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한북스님/본지편집인, 대구보성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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