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베트의 만찬>(덴마크, 1987)이라는 영화를 본 후 음식에 대한 생각을 바꿨습니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몸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고, 때로는 종교나 철학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매우 창조적인 일이었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은 <카모메 식당>과 함께 가장 유명한 요리 영화입니다. <카모메 식당>이 요리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영화라면 <바베트의 만찬>은 보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음식의 역할을 논하고 있는데, 영화는 요리사를 창조자로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휴머니즘 넘치는 창조자.

가브리엘 악셀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에는 세 부류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부와 명예를 쫒는 세속적인 사람들, 금욕과 헌신으로 일생을 보내는 청교도적 인물, 그리고 영화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인물로 삶의 가치를 현재와 행복에서 찾는 사람 등입니다. 

로렌스와 파핀은 부와 명예를 쫒는 사람들입니다. 로렌스는 장교인데 그는 젊은 한때는 방탕한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목사 딸 마티나를 사랑하게 됐고, 그녀에게 구애를 했지만 거절당하고, 그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하고, 이후엔 오직 부와 명예를 쫒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마침내 장군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그런데 35년이 흘러 그는 회한에 사로잡힙니다. 자신이 이룬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부와 명예가 그에게 완벽한 기쁨을 준 것도 아니고,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허무하고 허무하다”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세속적 욕망을 실현하면서 살아올 동안 철저하게 이것을 외면한 채 살아간 마티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녀는 과연 행복할까, 이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파핀 또한 로렌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였는데 바닷가 외진 마을에 요양 차 왔다가 목사의 또 다른 딸 필리파의 노래 소리를 듣습니다. 놀라운 재능을 가진 그녀에게 감탄해서 자신과 함께 파리로 가 유명한 오페라 가수가 되면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다면서 그녀를 설득합니다.

그런데 필리파 또한 언니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생활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고향 마을에서 평범하고 검소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파핀은 그녀의 결정이 옳았음을 35년이 흘러가서야 깨달았습니다. 한때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로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이제 나이를 먹었고, 목소리도 예전만 못해졌고, 점점 대중에게서 잊혀진 존재가 됐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허무함뿐이었습니다.

한편 목사의 두 딸인 마티나와 필리파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티나는 남들처럼 결혼을 해서 평범한 삶을 살 기회가 있었고, 필리파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자매는 세속의 삶을 포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에게는 현재의 삶 보다는 내세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수녀들처럼 살았습니다.

마티나와 필리파 자매는 자신이 태어났던 바닷가 외진 마을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웃을 돌보면서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활동을 하며 천국에서 누릴 영광에 현재를 희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가끔 ‘자매님은 꼭 천국에 갈 것’이라고 말해주면 볼이 발그레해지면서 행복해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이지만 마티나와 필리파의 삶은 나름 만족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녀들은 평온한 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라면 목사가 죽고 나서 신도들 사이에 불화가 종종 나타났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신도들은 서로를 비난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속였다고 비난하거나 상대 때문에 죄를 지었다고 원망하면서 서로 간에 반목이 잦았습니다.

비록 로렌스와 파핀처럼 회한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마티나와 필리파의 삶 또한 그리 바람직한 것은 못됐습니다. 평생을 바쳐 목회 활동을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성가를 불렀던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이 행복하지도 아름답지도 못하고 오히려 미움과 원망만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을 위해 봉사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못됐고, 자신들의 노력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요?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티나 자매는 사랑으로 이웃을 돌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민을 느껴서 희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들 자매는 그저 천국에 가고 싶어서, 천국에 있는 그들 주인에게 칭찬 받고 싶어서 이런 삶을 살았던 것이므로 그들의 동기는 이타심 보다는 이기심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베트라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바베트는 인간을 위해 불을 훔쳤던 그리스신화의 영웅인 프로메테우스적 인물입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으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자신의 전부를 던져서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마티나 자매와 다르지 않지만 마티나 자매가 천국에 가기 위한 방편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다면 바베트는 타인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을 헌신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행복한 일이기 때문에 헌신하는, 매우 현재중심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베트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레스토랑 주방장이었는데 내전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마티나 자매가 살던 바닷가 마을로 피신 온 여자입니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14년 동안 살았습니다. 마티나 자매가 목회활동과 자선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녀는 주방을 책임지고는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보다 나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신선한 가자미와 채소를 사기 위해 장사꾼과 흥정하고, 늘 따뜻한 차를 준비하고, 병든 사람을 위한 영양가 좋은 수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마티나 자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바베트를 하나님이 준 선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많은 행복을 주었던 바베트에게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1만 프랑이라는 아주 큰돈이 걸린 복권에 당첨된 것입니다. 무일푼으로 남의 집 다락방에 얹혀살던 바베트가 이 돈을 들고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일생을 편안하게 보낼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바베트의 행운에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섭섭했습니다. 바베트가 가버리고 나면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베트는 그 돈을 마티나의 아버지이자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인 컬트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 만찬에 쓰기로 합니다. 바베트의 결정은 좀 의아한 것이었습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그 큰돈을 다 써버린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나중에 바베트의 만찬을 먹은 사람들의 변화를 보고나면 그 결정이 옳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베트가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바쳐 차린 만찬은 프랑스 왕족이나 귀족들이 즐기던 만찬으로 매우 화려했습니다. 크리스탈 그릇과 값비싼 와인, 그리고 거북이, 메추라기 등 최고의 재료로 가 만든 프랑스식 정찬이었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맛있는 요리를 대하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음식에 빠져들었고, 탐닉했고, 행복감을 경험했습니다. 영화는 12명의 사람들이 요리를 먹는 모습을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보여주었습니다. 

바베트의 만찬을 먹은 사람들은 해묵은 감정들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를 사기꾼이다 거짓말쟁이다 비난했던 친구들은 화해했고,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었다면서 서로 비난하던 연인들조차 마침내 자신들의 과거를 담담하게 인정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해진 사람들은 너그럽고 자비스러워졌습니다.

그냥 한 끼의 식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한 끼의 식사는 오래 묵은 감정을 풀었고, 죄인의 사슬을 풀었고, 지옥백성을 천국백성으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기적을 보였습니다. 어떠한 종교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끼의 식사가 해냈습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바베트의 순수한 헌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금강경에서도 보면 ‘내가 너에게 준다’는 의식 없이 주는 보시야말로 그 공덕이 매우 크다고 했는데 바베트는 바로 이런 보시를 했던 것입니다. 바베트는 요리사로서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때 행복감을 경험하고, 그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마티나 자매가 ‘나’를 위한 보시를 하는 사람이라면 바베트는 ‘나’라는 의식이 없는 보시를 했습니다. 이는 《금강경》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에 가까운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티나 자매가 평생을 바친 봉사보다 바베트의 한 끼 식사가 더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기독교적입니다. 목사관이 나오고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부르고, 청교도적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주제는 불교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내세의 영광만을 추구하면서 현재를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청교도적 인물을 부정하고 있으며, 오히려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포도주로 현재를 즐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 행복하면 이곳이 바로 천국이고, 행복한 사람들이야말로 천국 백성이라는 태도입니다.

김은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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