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작가의 《시인(詩人)》은 흔히 김삿갓이라고 불리는 조선 후기 시인 김병연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면 구전되어 오고 있는 설화와 이문열 작가가 재구성한 소설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장 큰 차이는 김병연이 스무 살 무렵 영월 백일장에서 장원을 했을 때 시제(試題)에 맞춰 쓰다 보니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인 줄 모르고 매도했다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
오수연의 《부엌》은 연작소설이다 보니 동일한 제재와 주제를 가져가면서도 여느 단편소설에 비해서는 구조와 내용이 중층적이다. 오수연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부엌》이 ‘여성의 성장소설’이라고 정의한다. 왜일까? 이와 관련 방민호 평론가는 라는 평론에서 &ldq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 주인공은 탈북소녀 ‘바리’이다. 전통설화에서 ‘바리데기’는 오귀대왕의 일곱째 공주로 태어나 버려진다. 병든 부모가 약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나머지 딸들이 약을 구해올 것을 거절하자 바리데기는 저승까지 내려가서 온갖 고생 끝에 서천의 영약(생명수)을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린다. 바리데기는 사
1990년 후반 스타일 소설을 유행시키면서 한국문학의 아이콘이 된 김영하 작가는 물신화된 산업사회에 개인의 고독과 관계의 결락이라는 주제를 남성적인 문체로 잘 그려왔다. 그런 까닭에 이번에 소개하는 <당신의 나무>는 김동식 평론가가 일갈했듯이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당히 착한’ 소설이다. <당신의 나무>는 김영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는 영화 <밀양(密陽)>의 원작 소설이다. 먼저, 간단히 <벌레 이야기>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벌레 이야기>는 아이를 유괴 당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사건을 서술한 작품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알암은 얌전한 성격이지만 성적만은 우수한 아이다. 알암은 주산반에 들어간 뒤 주산학원에 다니게 해달라
몽시몽중조작(夢時夢中造作) 각시각경도무(覺時覺境都無). 꿈꿀 때에는 꿈속에서 조작하지만 깨어난 때에는 깨어난 경계가 전혀 없다. - 지공(誌公) 스님의 에서 인용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과 비현실은 철학의 인식론적 문제로 다뤄져 왔다. 플라톤은 《국� 렛【� 동굴의 비유를 들어 물질계만 알고 물질계 뒤의 이데아를 보지 못하는 미욱한
구도(求道) 소설이란 장르의 정의가 묘연한 게 사실이다. 구도의 사전적 의미는 첫째, 종교적 깨달음이나 진리를 추구한다는 뜻이고, 둘째, 불법의 정도를 구한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이광수의 《원효대사》, 한승원의 《원효》, 《초의》, 정찬주의 《인연》처럼 고대, 근·현대의 승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은 물론이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가 일본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먼저 그의 삶에 대해서 단편적으로나마 살펴보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도쿄 교바시(京橋)에서 출생했다. 용띠 해〔辰年〕, 용의 달〔辰月〕, 용의 날〔辰時〕에 태어났다고 하여 ‘류노스케’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생후 8개월경 어머니가 미쳤기 때문에 어머니의 친
민경현 작가의 화승(畵僧) 연작은 예술가 소설이다. 화승 연작의 주인공은 예술가 중에서도 불모(佛母)여서 자연스럽게 불교소설의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불모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화승 연작은 한국문학사로 볼 때 김동리 작가의 솔거 3부작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리고 또 그렸니라. 일생에 꽃만 그렸니라. 천지에 꽃만 있으라 그렸니라.&rdq
필자는 라는 소설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봤다. 영화 (1982)는 후카사와 시치로의 동명 소설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극화한 것이다. 이 영화는 이마무라 쇼헤이에게 첫 번째 칸 영화제 상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배우들과 산촌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구효서의 도 낙태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를 통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기저에는 모성애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와 비교했을 때 원시적이고 주술적이다. 그래서인지 독자 입장에서는 주제의식 역시 심원하게 다가온다.
김연수 작가의 는 우란분절을 앞둔 한 사찰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먼저, 간단히 줄거리를 살펴보자. 주인공 예정은 연로한 보살만 활동하는 ‘지장회’에 입회하려고 공양주보살을 찾는다. 공양주보살은 예정에게 “지장회란 지은 죄가 무던하게 많아 지장보살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늙은 영혼에
역사와 환상이 기묘하게 조우한 지점에 《금오신화》가 있는 것이다. 그 질곡의 역사를 몸으로 아파한 매월당 김시습이기에 ‘이 몸이 본디 환상〔色卽是空〕’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매월당 김시습의 광대무변한 예술혼은 이문구 작가를 만나서 천 년의 시공간을 초극하여 이 시대에 다시 설 수 있는 것이다.
한국문학 작단에서 보자면 1990년대는 신경숙, 윤대녕, 장정일의 시대였다. 신경숙 작가가 가족이라는 보편적이면서도 숭고한 주제를 특유의 가슴에 스며드는 서정적 문체로 잘 승화했다면, 장정일 작가는 대담한 성 담론을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법을 통해서 펼쳐나갔다. 그런가 하면 윤대녕 작가는 존재론적인 고독과 영원성의 희구라는 도저한 주제의식을 선(禪)적인 에스프리를 통해 구현하였다.
몸은 마음로 인해 존재하고, 마음은 몸으로 인해 존재하니 원래 둘은 깊고 깊은 한 뿌리 전경린의 《황진이》는 빼어난 전기소설이다. 전기소설의 완성도를 결정짓는 것은 작가가 얼마나 주인공의 삶을 체화(體化)했는가 여부일 것이다. 전경린은 정염(情炎)의 작가로 불릴 만큼 탁월한 문체미학으로 사랑의 영원성을 묘사하는 동시에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이어지는
그리움 없이 어찌 이 세계에서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으랴 그리움 없이 어찌 이 세계에서 한 송이 꽃을 지울 수 있으랴 그리움 없이 그리움 없이 어찌 내게서 찾아 나설 분 있겠는가 고은의 《화엄경(華嚴經)》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화엄경》<입법계품(立法界品)>을 장편소설로 극화한 것이다. 소설이지만 중간 중간 깨달음의
정휴스님은 독특한 이력(혹은 행장)을 지니고 있다. 승려로서는 드물게 서사문학을 써 왔다는 게 이색적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명명되는 선(禪) 불교 전통 때문인지 대부분의 승려 문인들은 운문문학(시)이나 에세이를 집중적으로 창작해 왔다. 그러나 정휴스님은 1971년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돼 문단에 데뷔하였음에도 두 편의 주목할
김한빈 감독의 영화 《명량》을 본 관객이 1,600만 명을 넘어섰다. 《명량》은 이순신 장군이 지휘 아래 12척의 조선 해군이 330척의 일본 해군을 물리친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최근 10여 년간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소설, 드라마, 영화는 모두 성공을 거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무능한 임금과 조정이 나라를 풍전등
다음으로 다치하라 마사키의 《겨울의 유산》에 대해 살펴보자. 소설 속에서 ‘겨울’이 의미하는 것은 ‘무상(無常)’이다. 따라서 소설 속 화자는 무상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할 수 있다. 《겨울의 유산》은 ‘행복감과 무상감 사이(유년시대)’, ‘무량사 토담길(소년시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금각사(金閣寺)》와 다치하라 마사키(立原正秋)의 《겨울의 유산》은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작품 다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볼 수 있고, 선(禪)불교의 공안(公案)으로 그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두 소설의 주인공 다 임제종 승려의 아들이다. 특이할 만한 것은 두 화자 다 내적으로 아버지는 경외(敬畏)하면서도 어머니는 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