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인연따라]팔달사
“도심포교 원찰 꿈꾸며”
2009-08-05 오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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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사는 80여 년 전 비구니 홍법 스님의 원력으로 100여 평 규모의 ‘팔달암’으로 시작됐다. 지금에서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 성곽을 병풍 삼아 1500여 평 부지에 대웅전, 산신각, 조사당, 종각, 요사 등이 들어서고 각종 수목과 꽃들로 수놓아진 도심 속 전통사찰(1988년 75호로 지정)이 되었지만, 그 시작은 여느 도심사찰과 마찬가지로 미미했다.
또한 산신각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후불탱화는 1989년에 조성되었다고 화기에 기록하고 있어 이 당시에 새로운 불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해주며, 역시 1989년에 조사당의 영정이 제작되어 이 당시에 조사당의 건립이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2년 전 주지로 부임한 혜광 스님은 이미 주변 3층 건물을 사들여 ‘불교교양대학’을 개설?운영해 최근 1기 수료생을 배출했고 현재 2기 수료생을 모집하고 있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 올해부터 ‘불교문화?교양 강좌’도 개설해 불자 신행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도심사찰은 불자들의 신심을 키우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된
대웅전
팔달사 경내 가장 위쪽에 앉아 수원 시내의 한 중심을 모두 내려다보게 하는 대웅전은 도리통 5간 양통 3간의 평면을 갖는 건물로, 철근콘크리트조와 목조를 조화롭게 결합시켜 지었다. 유독 크게 보이는 어간 옆으로 소슬빗꽃살 창과 심우도로 수놓인 외벽이 보였다.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다포형식의 공포가 청기와를 얻은 팔작지붕을 이고 있었다. 대웅전 불단에는 석가모니불이 모셔졌고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이 좌?우로 앉아 있었다. 화기에 의하면 “불기2526(1982)년에 조성?봉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불단 좌우로는 벽화를 그렸는데, 석가모니의 일생을 6폭의 그림으로 그려 좌우에 각각 3폭씩 펼쳐놓았다.
산신각, 조사당
산신각은 조사당과 함께 대웅전 왼쪽에 앉아 있다. 따로 ‘산신각’, ‘조사당’이라는 현판을 달지 않아 초행자에게는 마치 요사로 인식되기 쉬운 건물이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산신각 초석은 원형초석을 사용했는데, 고대 건축에 많이 사용하던 쇠시리까지 두었다. 전면 창호는 유리를 주재료로 한 미닫이로 구성된 산신
범종각
팔달사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구분되는데, 공간 사이에는 매우 큰 높이차가 있어 서로 공간이 연계되기가 어려운 특징을 갖고 있다. 이 두 공간을 서로 연결해주는 건물이 범종각이다. 높은 계단 상부에 중층으로 건립해 점이적인 공간을 만들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참배객을 상층 기단으로 안내하고 있다. 또한 매우 높게 솟은 범종각의 모습만으로도 강한 사찰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범종각 안에는 범종, 운판, 법고, 목어의 사물을 모두 봉안했다. 범종에는 ‘팔달산팔달선원(八達山八達禪院)’이라 크게 명기되어 있으며, 운판 역시 ‘팔달선원(八達禪院)’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전면에 해와 달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까치호랑이
팔달사 용화전 외벽에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만면에 미소를 머금게 하는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중 스님은 “약 100여 년 전에 그려졌다”고 귀띔해주었다. ‘호랑이 담배피우는 그림’이라고 불리는 이 벽화는 토끼가 호랑이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호랑이는 나름대로 위엄을 갖춘 자세를 취한 듯하나 얼굴 표정에 배어나는 어수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담뱃불을 붙여주는 토끼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밝고 요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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