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이나 명상은 왜 하는 것인가. 대략 이런 일은 마음의 평화나 안정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적 성숙이나 인격의 완성을 바라는 마음도 있어서일 것이다.

일상에서 겪는 불안이나 우울, 좌절감 같은 것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이런 현상들의 배후에는 한 생명체가 어김없이 직면해야만 하는 생사고락이라고 하는 보다 근본적인 실존적 문제가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실상 생사고락의 문제는 그에 동반된 개체 인간의 두려움이 핵심 사항일 것이다.

사념처(四念處) 수행의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인간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 말이다. 의식의 기층에 숨어 있는 두려움이나 불안정한 정서, 우울한 생각들은 인간 생래/에고의 원초적인 감정 반응 양식들이다. 이런 현상들은 표층의식에서 기인된 게 아니다. 마음의 제반 현상들은 알다시피 인간의 심층의식에 뿌리를 두고 밖의 사건/현상에 반응을 하여 작용한 결과다. 아마 자기의 꿈을 웬만큼 해득할 수 있는 자라면 심층의식이란 것이 대단히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챌 것이다. 심층의식이 밤낮으로 왕성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것이다. 표층의식과 심층의식 간에는 깊은 상관성과 상보성이 있다. 인간 의식작용의 대강이다.

요즘엔 불교 심리학이니, 명상치료니 하여 불교 관련 학문의 영역이 예전보다 훨씬 넓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유식불교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나 해석을 한 책도 여럿 눈에 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을 명상과 접목시키려고 여러 측면에서 연구를 한 논문도 자주 접한다. 서양의 저명 철학자들이 불교와 어떻게 맥락이 닿고 있는지 탐구하려는 학문적 노력들도 적잖아 보인다. 모두는 인간의 행복과 안정을 찾는 방도/왕도가 무엇인지를 밝히려 한다. 한데 불교와 접목을 시킨 이들 학문 영역에서 간혹 뭔가가 하나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컨대 심층의식을 분석하고 그래서 자신의 근본 갈등 문제/구조가 무엇인지 밝히려고 공부하는 경우다. 유식 불교의 현대적 해석 입장이다. 유식불교는 제법(사물/현상)은 다 연기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합리적으로 실증하려는 지혜가 담겨있다. 현대 심리학적 입장에서 봐도 매우 유의미한 가설이다. 표층의식이든, 심층의식이든 이 의식에서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 역시 조건 지어져 나왔다는 것을 환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에서 불교를 심리 연구의 일환으로, 말하자면 불교를 심층 심리학적 견해로 환원시키려는 의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식공부를 하여 멀리서 제반 마음 현상에 대한 인과 관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 규명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하나 불교 공부의 핵심은 무엇보다 마음 현상의 공함을 깊이 관(觀)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일부에서 이 점을 다소 소홀히 다루고 있지 않나 하는 인상이다.

마음 현상을 깊이 관할 수 있는 능력. 선(禪)을 하는 이유다. 그런데 통상 선 공부는 어렵다. 공사상을 언어적 수준에서만 헤아리는 사람이 있어서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의당 체험적으로 공사상을 체득해야 불교와 심리치유의 통섭이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해서 이 분야 학인들은 매일 밥을 먹듯 수행이 일상화 돼야 할 것이다.

내 경우도 그랬다. 불교 공부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선 공부하다가 ‘실패’를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 아닌가. 수행 중에는 똥 무더기 같은 몸에 파리 떼 같은 망념들이 끝도 없이 들러붙는다. 근기가 약한 사람들은 의단이 생기기도 전에 심신이 쇄락해져 나가떨어지기가 일쑤다. 알음알이에 고착된 사람들은 끝없이 새로운 관념들을 만들어나가는 일로 세월을 허비한다. 선을 하다가 ‘말 못할 골병’만 들고 말았다. 스스로 침몰해 버린 케이스가 많다는 것이다.

재가자 신분에서 수련중인 상담 치료사들에게 권하고 싶은 한마디다. 화두 선이 ‘체질’에 안 맞을 것 같으면, 대신 마음 내려놓기(放下着) 수행을 일상에서 꾸준히 해보자는 거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도 권한 바 있는 방편이다. 불교적 감성이 깊은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쓴 ≪놓아버림≫이란 책에는 그 수행법이 아주 소상하게 소개가 돼 있다. 인욕 정진도 실상 놓아버림을 말한 것이다. 요즘처럼 어지러운 세상. 인욕(정신)이 새롭게만 다가오기도 해서다.

신승철/시인,큰사랑노인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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