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종교학자가 “종교가 이토록 사람들의 신망을 잃어가다가는 조만간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박물관의 유물 같은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게다가 몇몇 종교가 시대에 잘 안 맞는다거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서 쇠퇴할 위기라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에 함께 그런 위기가 닥쳐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물론 종교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특한 현상이라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한국사회에서 종교들의 ‘정치과잉’ 혹은 ‘사회윤리성 방기’가 있지 않나 싶다.

종교인이나 종교단체가 선거에 개입하거나 편향된 정치행위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대로 사회적 현안에 대해 남의 일처럼 여기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두 가지 태도가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에 대한 무관심으로 몰아간 게 아닌가 싶다. 종교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도 편향된 정치행위로 치닫지는 않는 것, 그것이 종교와 사회 사이의 불문율이다.

불교의 종교성은 탈도덕 혹은 초도덕이라는 이미지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모른 체하는 것, 초탈한 듯 하는 게 미덕처럼 보이는 것이다. 불교가 사회 윤리적 성격이 약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듯하다. 따라서 불교에 사회 윤리적 면모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논리적 모순 즉 이율배반일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이 비단 현대의 문제만은 아니다. 동양 전통에서 윤리성은 개인의 양심 내지는 의식의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서면서 그것이 사회구조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다. 신문물 혹은 개화라는 이름으로 밀어닥친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는 불교를 포함해서 이전의 전통적인 세계관과 인간관에 전면적 전환을 요구했다. 이러한 사조는 옳든 그르든 근대시기 동북아시아 전체를 휩쓸었던 주요한 흐름이었다.

근대시기에 사회 윤리적 문제의 중요한 특징은 그것이 사회구조적인 측면으로 전환 내지는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의 윤리문제가 하부구조(Unterbau)와 유리된 상부구조(Überbau)만의 문제였다면, 근대 이후로는 하부구조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윤리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의식이나 양심의 차원에 국한되어 논의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근대시기 한국불교는 두 가지 과제를 떠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동북아시아 불교가 오래전부터 짊어지고 있었던 불교이론에서 사회윤리성을 어떻게 확보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번째는 사회윤리성이 개인의식의 문제를 넘어 사회구조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불교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1931년 12월 9일에 《삼천리》 잡지사의 기자가 만해 한용운을 인터뷰했다. 겨울비가 장안 네거리를 질퍽하게 적시고 있었다. 기자가 먼저 물었다.
“석가께서 지금 오늘 점심 때 쯤 광화문(光化門)통을 지나다가 큰 부자(富者)를 만났다고 합시다. 그때에 어찌 했겠습니까?”

만해가 대답했다.
“경전에, ‘두 벌 옷을 가졌거든 벗어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리하셨겠지요. 대체로 석가께서는 재산의 축적을 부인합니다. 경제상의 불평등을 배척합니다. 당신 자신도 늘 풀로 옷을 지어 입으시고 설교하며 돌아다니셨습니다. 소유욕이 없이 살자는 것이 그분의 이상입니다. 선한 자, 악한 자라 함이 소유욕에서 나온 가증할 고질이 아닙니까.”

기자가 말끝을 흐리며 다시 물었다.
“석가의 경제사상을 현대어로 표현한다면…….”
만해가 단호히 대답했다.
“불교사회주의(佛敎社會主義)라 하겠지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불교의 성지인 인도에는 불교사회주의라는 것이 있습니까?”
만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나는 최근에 불교사회주의에 대해 저술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기독교사회주의가 학설로서 사상적 체계를 이루듯이 불교 또한 불교사회주의가 있습니다.”

만해가 말하는 불교사회주의는 무슨 공산주의 운동을 하자는 뜻은 아니다. 그가 말한 불교사회주의란, 개인의 의식과 양심에 의지하는 윤리성이 아니라 하부구조의 변화를 통해 종교의 사회윤리성을 확보하자는 뜻이었다. 이러한 관점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의 대처(帶妻) 옹호론이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대처를 계율의 문제로 파악했다. 이러한 비판은 윤리의식과 관련한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는 윤리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이 이미 하부구조 중심으로 옮겨간 상황이었던 것이다. 만해는, 대처제가 파계 여부를 다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처는 파계가 아니기 때문에 용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설사 파계라 하더라도 분명한 시대적 요청이기 때문에 용납되거나 적어도 용서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만해의 대처옹호는 그가 계율을 등한시해서도 아니었고, 일본불교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때문도 아니었다. 불교가 변화된 사회윤리의식에서 요구하는 불교 자체의 하부구조의 변화를 단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을 반영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만해 개인뿐만 아니라, 근대 신흥종교들 대부분에 내포되어 있었다.

하부구조의 변화 없이 사회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거나 기만이다. 하부구조의 변화만으로 사회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공허하다. 이러한 과제는 근대시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남아있는 종교계의 숙제다. 최근에 참사가 있었다. 종교계는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엄한 곳을 가리키며 책임을 묻겠다고 변죽을 울리는 자들이 있다. 나쁜 사람들이다. 시선을 돌려 여실지견(如實知見)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다” 하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무책임한 사람들이다. 책임을 묻지 말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스템의 문제다”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비겁한 사람들이다. 마치 칼 쥔 자가 칼이 죄인이라고 변명하는 것과 진배없다. 무작정 “기도합시다”라고 말하거나 “누구도 미워하지 말자”는 자들도 있다. 알량한 사람들이다.

세상이 뒤집어졌는데도 종교계가 하늘만 쳐다보거나 먼 산만 바라본다면, 사람들은 세상에 종교가 왜 필요한지 더 묻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불교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