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품은 진여불성의 뜻을 달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어서 “월유품(月喩品)”이라 한다. 앞의 조유품(鳥喩品: 새의 비유)과 뒤의 보살품이 모두 여래의 진실한 응화의 뜻을 담고 있으며, 나타나고 숨는 것은 자행(自行)과 화타(化他)를 의미한다. 실제 이 품에는 달이 차고 점점 기우는 것, 해가 길고 짧음, 혜성이 나타나는 길흉 등의 세 가지를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조금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나타나고 숨어버리는 것을 비유하고 있으며, 그중에도 달이 해와 별을 모두 섭수하므로 이 품의 제목을 월유품이라 하였다.

먼저 달의 비유는 여래성품의 진실한 모습을 달이 나오고 들어감[出沒], 달이 차고 기울어짐[虧盈], 달이 크고 작음[大小], 달의 월식의 나타남[善惡], 월식의 길고 짧음[長短], 중생들이 보기를 좋아하고 싫어함[樂厭]에 대한 내용이다.

첫째, 달이 나오고 지는[出沒] 것이란 사람들은 달이 뜨지 않는 것을 보고 달이 없어졌다고 하고, 달이 뜨는 것을 보고 달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달의 성품은 참으로 뜨고 지는 일이 없다. 여래의 진실한 성품도 이와 같아서 생멸이 없는데, 중생들의 교화를 위해서 생멸을 보이니 나왔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라는 비유이다.

둘째, 달이 차고 기울어짐[虧盈]이란 이곳에서는 보름달일 때에 다른 곳에서는 반달로 보이고 이곳에서 반달일 때 다른 곳에서는 보름달로 보듯이 달의 성품은 이지러지거나 둥글어지는 일 없으니, 여래 법신은 원만하고 청정한데 응화하여,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염부제에 나는 것을 보이기도 하고 열반에 드는 것을 보이기도 한다.

달의 출현과 여래의 출현을 배대하면, 여래가 처음 탄생하는 것은 초하루 달과 같고, 일곱 걸음 걸은 것은 초이틀 달과 같으며, 혹 글방에 들어가는 것은 초사흘 달과 같으며, 출가함은 여드레 달과 같고, 미묘한 지혜로 마군을 깨뜨리는 것은 보름달과 같고, 삼십이상 팔십종호를 나타내어 열반을 나타내는 것은 월식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우리가 혹은 반달로 보고 혹은 보름달로 보고 혹은 월식으로 보지만 진실로 달의 성품은 나오고 들어감이 없이 항상 둥근 달인 것과 같이 여래의 진실한 몸도 이와 같이 항상 머물러 변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셋째, 달이 크고 작음[大小]이란 달의 모습이 크고 작은 것이 소줏고리와 같다고 하고 혹은 수레바퀴와 같으며 혹은 49유순과 같다고 하는 등 달이 본래 하나이지만 여러 중생들이 제각기 달리 보는 것과 같다. 곧 여래의 진실한 성품은 달과 같이 법신이어서 나고 없어짐이 없는 몸이지만, 방편으로 나타내는 몸이 세상을 따르느라 한량없는 본래 업의 인연을 보이는 것으로 가는 곳마다 태어나는 줄로 보이는 것이라 한다.
만월이 나와 온 천하를 비추듯이 제불여래도 달과 같이 두루 응현하여 중생들에 따라 모습을 나타내어 근기에 따라 설법하는 것을 비유한다.

넷째, 달의 월식의 나타남[善惡]이란 지구가 태양의 빛을 가리면 달이 가려지는 월식이 일어나는데, 경전에서는 라후라 아수라왕이 손으로 달을 가려 월식이 일어난다고 한다(아수라들은 하늘의 신들과 자주 다투므로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아수라왕이 실제로 월식을 할 수 없고 아수라가 달의 광명을 장애하는 까닭에 세상 사람들은 이때 월식한다고 부른다. 만일 아수라가 손을 떼면 세상 사람들은 달이 다시 소생하였다고 하면서 달이 괴로움을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래도 이와 같이 어떤 중생이 나쁜 마음을 내어 여래의 몸에 피를 내어 오역죄를 짓거나 일천제가 되는 것을 보임은 오는 세상의 중생들을 위하여 이와같이 악업으로 승가를 파괴하고 법을 끊게 하는 등 곤란한 일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에 있어서는 어떤 마군이라도 여래의 몸에 피를 낼 수 없으니 여래는 힘줄이나 골수가 없고 괴롭히거나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이를 통하여 중생들의 악업을 제지하고자 세상을 따라 이렇게 나나내는 것이다.

다섯째, 월식의 길고 짧음[長短]이란 사람들이 보면 6개월에 한 번 월식하지만 위에 있는 하늘에서는 잠깐 동안 월식을 보게 된다. 이것은 하늘의 세월은 길고 인간의 세월은 짧기 때문이다. 여래도 이와 같아서 천상이나 인간들이 여래의 수명이 짧다고 하는 것은 천상에서 잠깐 동안 여러 번 월식을 보는 것과 같고 여래는 잠깐 동안에 백천억 번의 열반함을 보여서 번뇌마나 오음마 사마 등을 끊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마군들은 여래가 열반에 드는 줄로 아는 것이다. 여래는 세간의 여러 가지 성품을 따르므로 열반에 드는 줄로 알게 되지만 여래는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 중생들이 보기를 좋아하고 싫어함[樂厭]이란 밝은 달은 중생들이 보기를 좋아하거니와 중생들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많으면 싫어하게 된다. 여래성품도 이와 같아서 성품이 순일하고 청정하여 때가 없으므로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마음이 나쁜 사람은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기운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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