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 고위공무원직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한 것이 탄로나 자진사퇴라는 말로 포장하며 중도하차하는 일이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처럼 한 계단 한 계단 오를수록 그에 따른 도덕적 의미가 높아지거늘, 하물며 한 나라의 장관급 자리의 그것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그러한 인사를 장관급 요직 후보자로 내세운 청와대나, 이수차천(以手遮天)꼴로 한순간의 고비만 모면하려는 그 후보자의 단세포적 행태는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서 ‘말[口業]’은 참으로 중요하다. 10가지 불선업(不善業) 가운데 구업과 관련해서 4가지가 있고, ‘구시화문(口是禍門)’이란 표현이 있는 것도 모두 이것을 경계하기 위함일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천 명을 죽일 수도 있는 일이다. 입 밖으로 한번 나온 말은 다시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함부로 뱉지 말고 진실한 말, 상대방의 배려가 있는 말을 하기 위한 나름의 수행도 필요하다. 불선한 구업들을 짓고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금강경》〈이상적멸분〉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수보리야, 여래는 참다운 말을 하는 이며, 실다운 말을 하는 이며, 사실과 같이 말하는 이며,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이니라.”
이것은 부처님 말씀의 바탕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쓰는 말도 이러한 바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이나 사실이나 진실에 바탕을 두지 않은 말은 병든 말이며 유희이며 조롱일 뿐이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이야기의 내용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의 가치와 본분을 배우고 그 가치와 의미를 전하는 것이 모든 말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을 넘어선 이야기는 과(過)한 것이다. 인간을 넘어선 이야기는 넘치는 말이다. 우리는 사실에서 인간을 이야기해야 한다. 삶을 등지지 않은 행위와 침묵의 언어가 때론 더 깊은 맛을 주기도 한다.

법진 스님/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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