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리도 과격한가?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국민들이 언제 해경을 해체하라고 했나?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양경찰을 해체하면 외국어선의 침범이나 각종 해양범죄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겠다는 건가?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여 잘못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라는 것이었지…… 더구나 현재 실종자들이 여전히 저 바다 밑에 있고 그들을 찾기 위한 작업이 해경의 지휘아래에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다 대고 해체라는 날벼락을 터트리는 건 도대체 무슨 심사인가?

이해할 수 없는 해경 해체 발언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인 관행과 제도를 바꿔서 정상화화기 위한 개혁
작업을 진행”해 왔다고 밝혔다. 그런가? 민주국가에서 정부조직을 국민들의 동의도 물어보지 않고 통째로 해체하겠다고 불쑥 발표하는 지금의 정부가 정상인가? 민주주의 나라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매우 상식적인 일상은 민주적 절차를 따르는 것이다. 그 절차가 비록 더디고 비효율적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민주적 절차를 지키지 않고 오직 자기만이 옳다며 밀어붙인 정책들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을 일으켜 왔는지를 똑바로 보아 왔다. 대통령과 정부부터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데, 누가 절차며 규칙이며 제대로 지키려 하겠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대안도 제시되고 있다.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그런 소리가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담화문에 담긴 해결책이란 건 대개 기술적인 것들이다. 정부의 진짜 적폐는 문제가 발생하면 기계적으로 대응하는 습관이다. 지금처럼 해경에서 문제가 생겼으니까 해경을 해체하고, 그러다가 해경이 없어 문제가 발생했다면 다시 해경을 설치한답시고 법석을 떨 것이다. 아니 어느 순간 슬그머니 해경부재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해경 설치에 따른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와 그 후속조치들은 우리들이 현재 얼마나 얄팍한 위험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수많은 인명 손실을 겪을 때에도 인재(人災)라며, 안전불감증이라며 떠들어 대었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또 발생하고 있다. 왜인가?

위험한 고속성장 돈만 밝힌 압축성장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가 얼마나 심각한 위험사회인가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과학기술의 발전과 이에 따른 산업화는 결과적으로 위험도를 점점 높이는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가 200년, 300년 걸려 한 일을 우리는 불과 3, 4십 년만에 해치웠다는 자랑은 따지고 보면 그만큼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위험을 쌓았다는 말이다. 무섭지 않은가? 2014년의 대한민국이 날림으로 쌓아 올린 고도의 위험물이란 사실이.

압축성장이란 말은 다른 건 다 무시해도 좋으니 오직 돈만 바라보며 달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를 위해 절차는 무시되고, 의견은 묵살되었다. 효율성이란 미명아래 불법과 편법이 기승을 부리고, 민주주의는 억압되었던 거다.
이제는 잠시 멈춰 지난 일을 되돌아 볼 때다. 밝은 미래는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위에 세워지는 거다. 대한민국은 벌써부터 온갖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중산층의 몰락, 최고 수준의 노인자살률, 세 모녀와도 같은 가족의 동반자살 …… 이 용어들은 우리가 현재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표지이다.

정부여당의 앵무새로 전락한 언론

마침 한 매체에서 뉴욕타임스(NYT)가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평범한 한국 국민이 자기 자신과 한국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며 한국이 “국가적인 자기 성찰(national soul-searching)”을 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하였다. 이 사설의 제목처럼 우리는 이제 답을 찾아야만 하는 도정에 들어섰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찾아내야만 한다.

성찰과 반성을 위한 전제조건은 표현의 자유와 공정한 언론이다. 언론이 정부여당의 앵무새가 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에서는 결코 바른 성찰과 반성이 나올 수 없다. 세월호 참사보도에서 보여준 우리나라 주요 언론사들의 행태는 분노를 넘어 절망적인 것이었다. 대통령의 담화문이 진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KBS부터 시작해서 MBC,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까지 먼저 언론의 자율과 독립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어린 성찰과 반성 필요

“일은 만 가지가 다르지만 요점은 하나이니 임금의 마음이 그것이고, 정치는 만 가지로 나뉘어도 요체는 하나이니 언로(言路)가 그것입니다. 임금의 마음이 혹 순수하지 못하면 일은 반드시 어그러지고, 언로가 열리지 않으면 정치는 더욱 껍데기만 남게 될 것입니다.”

숙종 때의 문신 송상기(宋相琦)가 왕에게 올린 상소문의 한 구절이다. 왕이 한 쪽 말만 듣고 싶어 하면 언로가 막히고, 언로가 막히면 나라는 빈 쭉정이가 된다는 뜻이다. 불편부당한 언론의 보장이야말로 국가경영의 핵심이다. 옛날 서슬 퍼런 왕조시절에도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율 운운하는 게 정상인가?

공정한 언론과 표현의 자유야말로 대한민국이 정상사회로 진입하는 첫 순서이다. 그리하여 진정어린 성찰과 반성이 이루어질 때, 저 세월호에서 어른들의 거짓에 속아 죽어간 아이들 세대에게 물려줄 참대한민국이 찾아질 거라는 생각이다.

-철학박사 · 충남대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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