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병국, 정윤 부자.

지난 4월 12일 불기2558년 부처님오신날을 축하하는 음악축제 ‘불교음악 페스티벌’이 KBS홀에서 성황리에 끝났다. 니르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단장 강형진)가 창단 15주년 기념·25회 정기연주회로 마련한 행사에서는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이 가운데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올랐다. 무대 장치 실수로 피아노가 고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손으로 피아노를 잡아가며 열연했다. 앵콜도 받았다. 유럽 등지에서 활약 중인 정윤 씨이다.

피아니스트 정윤 씨는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를 연주한다. 만3세 피아노를 처음 배운 정 씨는 예원학교 3학년 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다. 장학생으로 런던 퍼셀 학교(Purcell School)에서 마리아 쿠르치오와 마크 스와첸트루버에게 음악을 배웠다. 영국 명문대인 브리스톨 대(University of Bristol), 맨체스터 북로얄 음악원(Royal Northern College of Music)에서 수학했다. 미국·헝가리 등에서 피아노를 계속 공부한 그는 세인트 제임스 피카딜리 등 미주·유럽 곳곳에서 연주한 경력을 갖고 있는 재원이다. 지난해 말 데뷔 음반 <Schubert: Late Piano Works>를 발표했다.

“절에 못가도 마음은 항상”

정윤 씨가 주목 받는 이유는 음악계에서 찾기 드문 불자이기 때문이다. 정 씨의 아버지는 국회 정각회 창립 실무를 맡았던 새누리당 정병국 불교위원장이다.

11일 공연을 앞두고 서울 동국대부속여고 강당에서 진행된 연주 리허설에서 정병국·정윤 부자를 만났다.

정윤 씨는 “중학교 때 한국을 떠난 뒤 줄곧 해외에서 활동했다. 고국에 돌아와, 그것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한 행사에서 연주한다는 것이 무척 기쁘다. 특히 한국의 대표 국악인 안숙선 님과 함께 무대에 서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이어 “몸은 해외에 있었지만 마음만큼은 부처님을 놓친 적이 없었다. 우주법계의 법왕인 부처님과 어울리는 음악 같아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를 선곡했다”고 했다.

정 씨는 어려서 아버지 정 위원장 손을 잡고 절을 다녔다. 도선사·승가사 등을 주로 다녔다. 성인이 된 지금은 귀국하면 강화 보문사를 거르지 않고 들른다고 했다. 법왕사 주지 계성 스님(前 조계종 포교부장)과는 각별한 사이이다.

정 씨는 “음악은 소리가 전부인양 알지만 그렇지 않다. 생각·철학 등과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공부하는 불교와 맥이 닿아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불자 음악인 적다는 소리에 한국 불려와”

▲ 피아니스트 정윤.
정 씨가 이번 무대에 선 것은 아버지 정 위원장 권유가 컸다.

정 위원장은 “지난해 니르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 후 강 단장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강 단장이 ‘불자 가운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적어 섭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해, 아들을 소개했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불교계와 정치권을 잇는 역할을 해 온 정치인이다. 국내 최초 불교유치원인 울산 동국유치원을 나왔다. 정 씨 조부는 울산에서 신도회를 창립했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 부친 정 위원장도 선친의 불심을 이어 받았다.

정 위원장은 동국대 철학과를 나와 국회 보좌관을 지냈다. 권익현 새누리당 상임고문을 도와 국회 정각회를 설립했다. 이후 불교방송 설립·경승제도·군내 군종장교 평준화 등에 힘을 보탰다. 새누리당 내 불교신도회도 세웠다. 2008년 권 고문이 조계종으로부터 불자대상을 받을 때, 공로상을 받았다. 현 불교포럼 회원으로 중앙신도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정 위원장은 정 씨가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까닭에 대해 “대학 시절, 서울 사는 선배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 못 해도 자식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서”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정 씨가) 어려서는 화가 나면 문을 걸어 잠그고 한참을 피아노를 치다가 나왔을 정도로 피아노를 가까이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며 “요즘은 화가 나면 그냥 먹는다”고 했다.

“정치권 몰이해, 불자 수 적은게 원인”

정 위원장은 산문폐쇄까지 이르렀던 불교계와 정치권의 갈등 원인을 정치인의 불교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찾았다.

정 위원장은 “정치권에 개신교가 넓고 깊게 퍼져 상대적으로 불교에 대한 이해가 좁다. 불교를 전통문화로 인식하지 않고 종교로 인식해서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각회 창립 시절 국회의원 절반이 불자였지만 지금은 30여 명뿐이다”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불교계와 정치권간 갈등이 종식되려면 불자 정치인 수를 늘리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데 불자들은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불교계가 (정권에) 힘을 보여줘야 할 시점인데도 여러 가지 이유로 보여주지 못하고 중도에 접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불교인연을 만화책으로 제작해 선거법 위반 시비에 휘말렸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박정희 前 대통령의 공과가 어떻든 자발적으로 영정을 모시는 사찰이 전국에 많다. 이는 과와 별도로 불교계에 공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회 참여 좋지만 안보만은 노터치”

정 위원장은 “정치권의 불교에 대한 몰이해도 문제지만, 불교계가 정치권에 표피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이어 “작은 것에 크게 분노하는 등 가벼운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다. 폭넓고 대범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교계가 세속 일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좋지만 제주 해군기지 등 안보 문제만큼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는 호국불교 전통과도 어긋난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스님들이 범계를 저질러도 재가자가 이를 지적하기는 무척 어렵다. 큰스님들부터 자정을 통해 불교의 바른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정교분리 원칙이 있지만 현대에는 다르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정치권이 썩으면 종교계가 쓴소리 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인들이 사회양심과 정신적 지주로 중심을 잡아줘야 나라가 바로선다”고도 했다.

-공동취재단 조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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