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자리는 인류의 큰 스승 거룩한 부처님께서 이 사바세계에 오신 것을 온 국민과 더불어 기뻐하며 봉

축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올해 부처님 오신날에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진도 앞바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로 인해 300명이나 되는 국민이 억울하게 죽었기 때문입니다. 꽃 같은 우리 자식들이 손가락이 부러지고 손톱이 다 빠진 채 몸부림치다 원통하게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여객선의 선장은 탑승객을 외면한 채 도망쳤고, 나라의 선장은 책임회피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은 더욱더 깊어지고, 파헤칠수록 갖가지의 부정부패와 정부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를 포기했으니 국민은 스스로 생존의 길을 찾아야만 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과 행복을 지켜야 합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이게 정부입니까?

온 국민은 지금 슬픔의 바다에 빠져 있습니다. 착하디착한 우리 국민의 눈에는 분노의 핏발이 서 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의 늪에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이 슬픔이, 이 분노가 절망으로 끝나버린다면 다음 재앙은 바로 자신에게 닥칠 것입니다.

국가가 부도덕한 자본가의 탐욕을 규제하지 않는 한, 경영효율이라는 허울로 민영화를 확대하는 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는 한,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의무를 게을리 하는 한, 세월호 사고는 대재앙의 불길한 전조(前兆)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 섬뜩한 경고를 애써 외면한 채 원인을 호도하고 책임전가에 급급하다면, 하늘과 땅에서, 산과 바다에서 그리고 삼천리 금수강산 곳곳에서 붉은 피가 넘치고, 비명소리가 메아리칠 것입니다. 지옥이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부처님은 완전한 행복인 열반(涅槃)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계급을 떠나 절대 평등한 세상을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불자들이 그것을 깨닫는 자리여야 합니다. 만약 불자들이 현실의 모순에 대해 침묵하거나 외면한다면, 그리고 지역주의에 매몰되어 대한민국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부처님 오신날 봉축법회는 한낱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고 세계의 지성인들은 한국의 불자들을 저들과 공범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이 분노로 표출되는 것은 정당합니다. 바로 지금, 세월호 참사의 분노가 국민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분노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지가 모여 진실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것이 현실에서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고자 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뜻이며, 부처님 오신날의 참된 의미입니다. 세월호 희생자의 왕생극락을 기원합니다.

 

-본지 편집인/ 대구 보성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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