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담스님.
4월25일 낮 성담스님을 만나러 금산 효심사를 찾았다. 《행복 119》의 저자 성담스님은 1992년 서대산에서 백일 정진 후 효심의 뜻을 깨닫게 되어 효심사를 창건했다. 산골마을 사람들은 스님에게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그만큼 불교와는 거리가 있던 주민들은 이제 절에 스스럼없이 드나들며 스님에게 불교를 배워가고 있다.

스님에게 현대적인 부처를 여쭸다.

“오늘날 부처님이 오신다면 모든 인류가 다 받들 겁니다. 다만 거창하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손 잡아주면서 ‘힘들지?’하고 다독여주셨을 거예요. 아픈 중생의 손을 잡아주며 ‘힘내서 일어나라’ 하실 겁니다. 신통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 ‘너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단다’라고 일깨워주실 겁니다. 지켜주고 사랑해주고 지혜도 일러주고 ‘밝은 마음을 가져야 말도 행동도 생각도 밝아지니 네가 밝아지면 네 가족도 이웃도 밝아진단다’ 하고 가르쳐주실 겁니다.”

스님은 나누며 사는 게 불교라고 말한다.

“부처님은 하늘에서 강림하지 않습니다. 이미 주변에 있습니다. 내 배우자거나 이웃일 수도 있어요. 부처님은 오늘의 언어로 쉽게 말씀하실 거예요. 옛날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수행한다고 참선할 필요가 없어요. 삼매에 들어야만 깨닫는 게 아닙니다. 부처님은 풀 한포기를 보고도 둘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현대의 언어로 어떻게 중생들에게 말씀하셨을까?

“깨달음은 1분에도 할 수 있어요. 요즘 시대에 맞게 스위치 누르면 깨달아야 해요. 사실 불법이 위대하고 대단한 진리이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건 중생심입니다. 소통·교감·공감이 바로 그것이죠. 부처님 말씀의 핵심인 공과 불이를 알아야 합니다. 공을 설명할 때 박수에 비유하자면 ‘박수 소리가 금방 없어졌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게 공입니다. 지금은 소리가 없으니 빨리 내 마음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불교가 현대사회에 가장 큰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스님은 20~30대와 저소득층에서 현대사회의 희망이 되는 종교로 불교를 꼽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불교가 부르짖는 게 ‘둘이 아니다’라는 것이니까 희망이고 대안이 되는 겁니다. 지금 한국불교가 위기라는 것은 부처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해서 그런 겁니다. 부처님은 사부대중이 절을 관리하라고 했어요. 스님은 수행하고, 재가불자들은 재정을 맡아서 운영을 하는 거죠. 지금 어떻습니까? 스님들이 돈독이 올라서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를 못합니다. 사찰 재정과 인사만 투명해지면 됩니다. 그러면 한국불교의 위기는 사라집니다. 불멸 후 400년경에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났는데요. 지금도 부처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대승불교운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스님과 절 마당에 앉아 얘기를 하다 보니 금산사에는 부처님오신날이면 어디에나 달려있는 연등이 없다. 환경 때문이란다.

“부처님오신날에 연등을 다는 건 원래 내안의 불성이 살아나도록 각자 연등을 만들게 한 겁니다. 그렇게 정성껏 만들어서 달아야 합니다. 공양정신을 되살리는 거죠. 대량생산으로 찍어낸 비닐등을 달게 아니라요. 비닐등은 지구를 어마어마하게 오염시킵니다. 요즘 동국대에서 종로까지 연등축제를 하는데요. 행사가 끝나면 쓰레기를 15톤 트럭으로 엄청나게 실어내야 합니다. 화려한 연등축제의 이면에 환경오염이 심한 거죠. 연등축제도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저는 차라리 연등을 달지 말자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연등 없이 무엇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할까?

“우리 절은 부처님오신날이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신도들에게 부처님오신날 절에 오지 말라고 합니다. 등 달 돈으로 수박 몇 덩이 사서 가족과 함께 동네 노인정을 찾아가 어르신들을 공양하고 말벗을 해드리라고 권합니다. 그게 바로 꺼지지 않는 등을 다는 겁니다. 부처님은 그 시대의 슈퍼스타셨어요. 부처님오신날 하루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날이 돼야죠.”

스님은 “중생은 곧 욕심”이라고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양심과 본심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스님은 “양심과 본심을 회복하면 상대방이 남으로 보이지 않고 측은지심이 바로 생긴다”고 설명한다.

“부처님은 중생이 중생이 아니라 이름이 중생이라 하셨습니다. 나무는 나무가 아닌 흙 물 바람 햇빛 사대로 이루어져 있죠. 나무 아닌 것 덕분에 나무가 존재하듯, 나 아닌 것 덕분에 내가 존재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나와 나 아닌 것이 둘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 몸입니다. 부처님은 구분은 해도 분리는 안 시켰습니다. 그게 부처님 방식입니다.”

성담스님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씀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수렵·채취·농사를 짓던 공동체 삶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자본주의가 극치에 달해 극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런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처님은 최고의 대박 상품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상품을 들고 영업을 못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취향에 맞는 상품을 개발하지 못한 거죠. 지금의 시대배경을 보면 부처님 가르침이 대박 터질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스님에 따르면 부처님은 세 가지를 강조했다. 우리는 운명 공동체라는 것과 서로 나누고 살아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중생심으로 보면 뇌는 생각하는 나와 생각하는 대상으로 두 개를 인식합니다. 분리가 된 2개로 느끼는데 연결된 2개입니다. 연결이 되어 있으니까 말이 통하고 이해를 하는 거죠. 분리된 건 차단을 말하는 거라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공과 불이. 공은 다 갖춰져 있는데서 나온다는 뜻이고, ‘둘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게 한다.

“코를 막아보세요. 1분만 지나도 둘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공기 없으면 나는 죽잖아요. 사람은 공기와 물, 땅, 햇빛을 나 아닌 거라고 인식하는데 그게 없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나 아닌 게 없어요. 나 아닌 걸 나처럼 돌봐야 합니다. 한 몸이라는 생각으로 내 몸처럼 생각해 내 주변을 돌봐야합니다. 둘로 보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죠.”

스님은 오안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절에 오면 법안을 쥐고 가야합니다. 그 다음 혜안을 줘야합니다. 지혜 중 최고죠.‘영원히 행복하게 해줘야지’하는 마음을 먹으면 불안(佛眼)이 나옵니다. ‘뭘 도와줄까’하면 천안이 나오죠. 육신의 눈 2개를 포함해 모두 오안이 생깁니다. 불자라면 오안을 가져야 합니다.”

-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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