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堯) 임금이 하루는 자신이 정치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알고 싶어 들에 나갔다. 마침 밭을 갈고 있는 늙은 농부를 보고는 지금 왕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늙은 농부 왈 :
“해 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네, 우물 파 물마시고 밭 갈아 밥 먹는데 임금이 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라고 노래하는 거였다. 이 노래를 들은 요임금은 자신이 정치를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 60년대에 태어나 50년을 살면서 많은 대통령을 보았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거의 매일 대통령을 보거나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보낸 것 같다. 나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통령은 주요한 일상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왜 우리는 “대통령이 나와 무슨 상관이야.”하면서 살지 못할까?

대통령은 나의 삶에 직접적 영향 미치는 존재

현대 사회에서 대통령은 그대로 나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대통령의 생각은 정책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정부 정책은 개인의 삶에 강력한 폭풍을 몰고 온다. 산업이 발달할수록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국가정책의 파급효과는 산업 곳곳에 미치며, 이는 곧바로 대다수 국민들의 삶과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맨날 대통령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는 거다.

세월호 참사를 놓고 대통령이 ‘적폐(積弊)’를 말했다. 적폐란 쌓인 폐단이란 뜻이니, 지금의 세월호 참사는 오래전부터 쌓여 온 폐단 탓이라는 게 대통령의 생각인 듯하다. 분명히 그렇다. 어찌 문제점이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불쑥 불거지겠는가. 그러니 대통령 보고 ‘사과하라. 책임져라.’하는 말들을 부당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적폐라니, 대통령 자신에겐 잘못이 없다는 뜻인가?

적폐를 말하는 대통령의 생각에는 대통령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재해 있다. 지난번 국정원의 증거조작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잘못된 관행’이라고 하였다. 연초 2년차 국정방향을 발표하면서는 오래된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이를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대통령의 말에는 대통령 자신은 결코 잘못을 범하지 않는 존재라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보여준다. 잘못은 이전 정부나 관행 때문이고, 대통령 자신은 언제나 옳다는 생각이 내재해 있는 듯하다.

남송(南宋)의 주자(朱子)는 유학의 도통(道統)이 맹자(孟子)이후 끊어졌다가 북송(北宋)의 성리학에 와서야 겨우 이어졌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끊어진 도통을 잇고 무너진 유교 정신을 다시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이런 사명감으로 주자는 도교와 불교를 맹렬히 비난하였다. 특히 당(唐)대에 화려하게 꽃핀 불교에 대해서는 그 비난의 강도가 훨씬 심했으니 불교는 오랑캐의 가르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편협한 중화사상은 이때부터 본격화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주자는 모든 잘못을 바로잡아 좋았던 과거를 재건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였다. 단 한순간도 흐트러짐 없이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사명을 완수코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주자학은 관학(官學)이 되었고, 최고의 권위를 얻었다. 조선의 개혁군주라 칭하는 정조(正祖)같은 분도 입을 열면 주자를 말하였으니, 주자를 말하지 않고는 도대체 이야기가 되지 않았던 거다. 주자학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대당의 선비를 사문난적(斯門亂賊)으로 몰아 죽인 나라가 조선이었으니.....오죽하랴.

나라를 망치는 이 탐관오리가 아니라 청백리?

이런 주자의 생각에 대해 명말(明末)의 학자 이탁오(李卓吾)는, 맹자와 송나라 사이에 있는 진(秦)‧한(漢)‧당(唐)과 중간중간의 위진(魏晉)과 오대(五代)에 이르는 천년하고도 수백 년의 기간에 사람들은 모두 어둠속을 헤맸다는 말이냐고 반문한다.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인 조선의 논리를 여기에 대입하면 이 시기의 학자들은 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인 셈이다. 그래서 청초(淸初)의 실학자 대동원(戴東原)이 (주자의 생각인) 리(理)가 수만의 사람들을 죽이면서도 그 해악을 모른다고 하였나 보다.

나라를 망치는 사람은 탐관오리가 아니라 청백리이다. 탐관오리야 제 한 몸 망치면 그만이지만 청백리는 백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이탁오의 말이다. 히틀러는 채식주의자에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 금욕적인 생활이 몸에 배인 사람이었다.

킬링필드의 주역 폴 포트는 캄보디아를 자주국가로 재건하는 일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을사년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는 그 일이 사직을 위한 길이라고 믿었다. 거창 양민 학살사건이나 제주 4・3사건의 주범들 모두도 스스로를 더할 나위 없는 애국자로 여겼다. 그들은 사명감에 불탔고, 국가에 헌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부처님은 모든 생각이 다 망념(妄念)이라고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망념이다. 왜 그런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은폐와 왜곡은 악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선의로 행하여진 비극이 얼마나 참담한가를 역사는 여실히 보여준다.

행여 대통령께서 자신은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아무런 사심 없이 헌신할 뿐, 결코 잘못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리하여 당신의 생각과 다르거나 당신의 생각에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잘못이라고 여긴다면..........절망이다. 언제까지나 무결점‧무오류의 고결한 모습으로만 국민들을 이끌려 한다면, 대한민국호(號)가 가라앉을 것이다.

은폐하면 더 깊은 절망에 빠질 뿐

절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희망이 피어난다. 자꾸만 왜곡하거나 은폐하려고 하면 점점 더 절망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갈 뿐이다. 대통령도 잘못할 수 있고, 판단착오를 일으킬 수 있음을 받아들여만 한다. 내 생각이 언제라도 틀릴 수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며, 나의 판단이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자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젠 뉴스를 그만 보려해도 자꾸 그쪽으로 손길이 간다. 그래서 오늘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고인다.  그 차가운 배 밑에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 순간의 절망도 사치스럽기만 하다.

오늘도 대통령의 입을 바라본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이 잘못이었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여당에 부족한 걸 야당에서 찾으려 한다고 하지는 않을까...... 희망하면서 말이다. 그때쯤이면 대통령과는 아무 상관없는 나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철학박사·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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