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8년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다. 구원의 스승이자 중생들의 사표로서 부처님 오심을 크게 찬탄하고 경배해야 하지만 올해는 이에 앞서 송구하고도 죄스런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중생들의 아픔이 있는 한 언제나 그들 편에서 따뜻하신 손길을 내어주신 부처님이셨기에 그 뜻을 거역한 것만 같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지난 달 우리는 진도 해상에서 채 피지도 못한 젊은 꽃들을 차가운 바다에 저버려야 했다. 그 미안함과 자괴감이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국민들이 이 참사의 여파로 정신적 공황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부처님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 사바세계에 나투셨다. 우리 불자들로선 환하고 편한 자리에 모시지 못하는 죄업에 마땅히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세상의 고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중생들은 여전히 삶과 죽음의 질곡 속에 놓여있고 탐 진 치 삼독심에 의해 세상을 어지럽히며 살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계도 전쟁과 기아와 폭력으로 서로를 살상하고 있으며 갈등과 대립으로 긴장국면을 늦추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권력과 횡포가 새로운 차별과 억압구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선 사회적 또는 경제적 약자가 양산되면서 또 다른 사회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접근하고 그 해결책을 내놔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동서양의 경계가 과거에 비해 많이 허물어지면서 미래사회의 운명을 불교적 가르침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불교계의 역할이 막중하게 요구되고 있는 바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형태와 방법적 측면에서 변화하는 세상은 그러나 본질적 측면에선 여전히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무수히 많은 전자기기의 발명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도모하고 있지만 인간 본질의 삶에 있는 고통을 없애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는 보다 많은 역할을 해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고통을 없애는 근원적인 해답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고통을 제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종교마다 다른 방식을 내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불교를 신행하는 이유는 고통을 없애고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르침이 불교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탕이 되지 않는 불자라면 진정한 불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참된 불자라면 자신만의 영화(榮華)를 추구하는 대신 스스로 고해(苦海)에 뛰어들어 다른 이의 이익을 나누고 유무정(有無情)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과 어울려 행락(行樂)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일곱걸음을 걸으시고 오른 손으로는 하늘을, 왼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시며 “하늘 위나 하늘 아래 오직 내가 가장 존귀하나니, 이 세계의 모든 괴로움을 내가 마땅히 편케 하리라(天上天下唯我獨尊 三界皆苦我當安之)”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탄생게다. 이 탄생게 속에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큰 뜻과 의의가 잘 나타나 있다. 다름아닌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평안케 함’이 부처님이 오신 참뜻이다. 부처님은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서, 다시 말해 고통 속에 빠져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처님을 고통과 슬픔의 현장으로 모시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 있지 않은 우리의 이율배반적인 삶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처님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크게 자성할 일이다.

우리는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성찰해야 한다. 다시금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스스로의 다짐은 물론이려니와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말과 구호만 앞세우는 허위의식은 접고 진정으로 보살행을 펼쳐 정토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예토는 공업중생의 세계다. 중생들이 함께 짊어지고 살아야 할 공업의 세계인 것이다. 보살행이 적극 펼쳐질 때 세계는 맑고 밝게 빛나는 법이다. 내년부터는 이러한 세상을 만들어 부처님 오심을 즐기고 찬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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