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터넷에 댓글을 거의 달지 않는다. 미담 기사나 감동적인 글에 칭찬의 멘트를 몇 번 단 게 전부다. 가까운 스님들이 어떤 일로 댓글러들의 뭇매를 맞았을 때도 나는 침묵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건 어차피 당사자가 감당할 몫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익명성 뒤에 숨은 악플러들의 비열함을 혐오한다. 천박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표현을 딱하게 여기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당당하게 나설 수 없음을 안쓰럽게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드러내고 품격 있게 잘잘못을 논하는 이들에게는 의견이 같고 다름을 떠나 존경심까지 생긴다. 그러나 그런 글은 가뭄에 콩 나는 것 같다.

행자 시절에 ‘봉은사 사태’가 터졌다. 이른바 괴문서라는 것이 양쪽에서 날아들었다. ‘양쪽’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 것은 대립하는 상대편을 서로 비난하는 것이었으니 발신자의 주소와 이름이 없어도 누군지 뻔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그들의 글을 보고 절망했다. 싸움닭들의 한심함이라니!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단 하나의 문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양쪽의 글이 똑같았다.

최근엔 어느 총림 방장스님과 관련된 괴문서를 보았다. 26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지만 괴문서의 내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라면 컴퓨터의 발전에 따른 유인물의 모양과 서체의 변화 정도라고나 할까. 나는 또다시 절망했다.

요즘 조계종 종정스님과 관련한 괴문서가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오죽하면 총무원 호법국장이 “익명성 유인물 배포 등 일체의 행위에 대해 종단 수호와 법통 확립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며 기자회견을 했겠는가. 그러면서도 유인물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확인해주기 곤란하다고 했으니 그 곤혹스러움을 짐작할 만하다.

일부 누리꾼이 악성 댓글을 다는 것과 우편으로 무기명 괴문서를 뿌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 당당하게 문제제기를 할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라.

한북스님/본지 편집인, 대구보성선원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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