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문학동네)은 고전소설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최래옥이 평했다시피 《심청전》은 ‘가난과 출세, 피지배자와 지배자의 양극을 공유하면서 선하게 중화시키는 완벽한 여성’의 영웅담이라고 할 수 있다.

《심청전》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앞 못 보는 심 봉사의 딸 심청(沈淸)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동냥젖으로 자란다. 15세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바다의 재물이 되기로 결정한다. 인당수(印塘水)에 빠졌으나 심청의 효심을 갸륵히 여긴 용왕이 연꽃에 태워 세상으로 돌려보낸다. 심청은 왕비가 되어 맹인잔치를 열고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은 충효에 대한 미담을 걷어내고 거기에 매춘 오디세이아의 여정을 입힌다.

황석영 작가는 초판본 작가의 말에서 《심청, 연꽃의 길》을 쓰게 된 경위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심청의 원형설화가 황해도 황주뿐만 아니라 충청도 예산, 당진 지방에도 다른 이름으로 남아 있고 전라도 부안, 무안이나 심지어는 섬진강 어구의 하동, 광양 포구에도 흔적이 보인다는 걸 알아냈다. 그러니까 해안을 거쳐서 나라 밖으로 나가는 길목의 고장에는 바다 멀리 팔려간 소녀들의 뒷얘기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들의 이름이 구전과 더불어 절집의 위패로 남아 있었다. 소녀들은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이들이 칠십년대의 근대화 시기에 서울 공장으로 취직하러 올라가서 집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도시 속으로 묻혀간 소녀들이나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기다리던 부모님들이나 동생들은 송금이 끊긴 훨씬 뒤에도 돌아오지 않는 딸과 누이의 이름을 절에 올렸을 것이다.

작가의 말에 단연 눈에 띠는 것은 ‘근대화 시기’와 ‘소녀’이다. 기실, 심청을 모티브로 근대와 매춘을 해석한 것은 황석영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채만식은 심청의 삶을 통해서 여성성의 상품화를 강요하는 근대성의 단면을 비판했고, 최인훈은 심청의 용궁 체험을 청루에서의 매춘 체험으로 설정했다. 그럼에도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심청이라는 소녀가 겪게 되는 매춘 오디세이아의 여정을 통해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을 재배치했기 때문이다. 심청은 조선의 제물포를 시작으로 중국의 난징, 진장, 대만의 지룽, 싱가포르, 일본 오키나와, 나가사키를 경유한 뒤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 여정 속에서 심청은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오키나와의 멸망, 메이지유신과 민란, 동학과 청일전쟁·러일전쟁 등 동아시아 근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탈향과 귀향의 여정 속에서 심청은 렌화, 로터스, 렌카로 불리게 된다. 우리말로 하면 연꽃이다.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심청이 타락의 수난사에서도 정화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모성애를 간직하기 때문이다.

중국 선상에 팔려간 뒤 심청이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은 “명심해라. 네 이름은 지금부터 심청이가 아니니라.”라는 자기부정의 명령을 듣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심청의 운명 앞에 근대라는 거대한 파고(波高)가 다가올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 황석영의 《심청, 연꽃의 길》표지.

《심청전》에서 심청이 인당수에서 빠졌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황석영 작가는 자의식 부정을 통해서 거듭나는 것으로 재해석해놓은 것이다. 그리하여 심청은 청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렌화로 거듭나게 된다. 렌화의 임무는 첸 대인의 시첩노릇을 하는 것이다.

첸 대인이 죽자 렌화는 첸 대인의 막내 구앙을 따라서 도박장과 주점과 기루와 아편 흡연소가 함께 어우러진 복락루로 간다. 거기서 렌화는 내로라하는 한량들을 만나고 ‘힘 있는 것을 꾀어서 힘을 갖는 법’을 터득하기도 하고, 비파를 뜯는 예인(藝人) 동유를 만나 첫사랑의 신열에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아편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인(情人)인 동유와 이별한 뒤 렌화는 대만의 지룽섬에 창녀로 팔려간다. 이곳에서 심청은 하룻밤에 열두 세명의 남자를 상대해야 하는 밑바닥 생활을 겪는다. 영국인 제임스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된 뒤 싱가포르로 간다. 드센 남정네들을 상대하며 그가 내세운 무기는 몸뚱이다.

그런가 하면 심청은 링링이 낳다 죽은 유자오를 맡아 키우는 대모(代母)의 역할을 하면서 여성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모성애임을 깨닫게 된다. 이 때부터 심청은 서양 남성과 동양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을 보살피기 시작한다. 심청이 늙은 매춘부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류쿠의 왕비로, 그리하여 종내는 깨달음을 얻은 보살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은 자비심을 지니기 때문이다. 류큐(오키나와)의 왕자 가즈토시와 결혼함으로써 심청은 세제개편이라든지 노인봉양이라든지 모성애에 입각해 소외받은 이를 돌보는 정치를 펼치기도 한다. 이는 《심청전》에서 심청이 왕비가 되는 것을 황석영식으로 각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혼혈아 양딸에게 의지해 제물포로 돌아온 심청은 황해도 황주의 한 절에서 ‘심청지신위(深淸之神位)’라는 위패를 찾아낸다. 연화, 렌화, 로터스, 렌카가 아닌 자신의 이름 심청을 되찾는 순간이다.

심청의 임종 장면은 처연(凄然)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하다. 심청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참 길은 멀기도 하다. 남들 해치지 말고 살거라.”.

너무나 당연한 말을 남기고 심청은 눈을 감고는 한번 빙긋이 웃는다. 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아주 희미한 웃음이다. 심청의 임종 장면은 소설 속 ‘연화의 길’이 ‘보살의 길’과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황석영 작가는 ‘향상일로(向上一路)’, 즉, ‘지극히 낮은 곳에 임했을 때 외려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근대라는 남성적 세계를 초극하는 길로 여성적 세계의 회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유보선 평론가는 《모성의 시간, 혹은 모더니티의 거울》이라는 글에서 심청의 여정을 “위험이 있는 곳엔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는 휠덜린의 말에 부합하는 길이라고 평가했는데, 휠덜린의 말은 육조 혜능 선사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깨달음과 상통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앞서 필자는 김동리의 《황토기》를 소개하면서 ‘힘의 서사’와 ‘서사의 힘’을 동시에 지닌 작품이라고 평한 바 있다. ‘힘의 서사’와 ‘서사의 힘’을 동시에 지닌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황석영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남성적 의지’로 명명되는 황석영 작가의 작품들에는 여장부가 곧잘 등장한다는 것이다. 《삼포 가는 길》의 백화, 《오래된 정원》의 윤희는 어쩌면 근대화 과정의 동아시아 역사를 몸뚱이 하나로 통과해온 연화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사족이지만, 연화(蓮花)는 불교적인 깨달음의 상징이고, 의상대사의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에서 알 수 있듯, 백화(白花)는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임을 밝혀둔다.

-유응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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