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의 한시 수필집 《맑은 바람 드는 집》이 나왔다.

이 책은 지난 7년 반 동안 한 달에 두 수씩 박물관 홈페이지에 꾸준히 번역해 올린 77편의 옛 시와 덤덤히 일상을 얹은 글들을 추려 모은 것이다.

'맑은 바람 드는 집', 이 서명은 한때 학승들이 지혜의 칼을 벼리던 곳이자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인 ‘淸風寮청풍료’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원래 한시의 맛은 우려내면 우려낼수록 알아보는 사람에 따라 그윽해진다고 한다. 이 책속에서 스님은 그 맛을 짤맛한 에세이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한시를 보는 하나의 관점이지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다만 독자들이 이런 방법으로 또다른 맛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알림판일 뿐이다.

이 책의 맛은 현실세계를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에서도 맛볼 수 있다. 산사를 둘러싼 자연의 변화와 일상의 흐름 위에 일하는 사람들이나 불우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뒤섞기도 한다. 큰 쥐[碩鼠]로 비유되는 사람들에게 은근한 야유를 보내는 심사도 낮은 곳을 향하는 저자의 시선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스님은 수많은 한시 가운데 이렇게 지면으로 실린 시를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말했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시, 너무 어려운 한자가 섞여 있거나 이해하기 힘든 시는 가급적 배제하고, 쉽고 평이하되 좋은 시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시를 골라 실었다”고 한다. 이것은 한시에 쉽사리 다가서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대한 배려이자 한시의 세계로 초대하는 저자의 전략인지도 모르겠다.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스님이 한시 한 수 한 수마다 한지에 직접 쓴 청아하고 반듯한 손글씨을 볼 수 있어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는 서정이 담겨 있으며, 주인의 개성이 녹아있고,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의 예지와 문화가 깃들어 있다.

흥선 스님은 11년째 직지사 성보박물관의 책임자로 일하며 절집의 문화유산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2009년 4월까지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고, 지금도 경북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스님은 《답사여해의 길잡이》시리즈 15권 가운데 제8권과 제13권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때부터 스님의 글은 고정 독자가 생겨날 만큼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흥선 지음/아름다운인연/13,500원

김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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