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참으로 허약하고 가난한 나라였다. 조선의 백성들은 단 한 번도 배불리 먹고 맘껏 놀아보지 못했다.
▲ 김문갑 박사
경제력이 그 모양이었으니, 군사력인들 오죽했겠는가. 왜란(倭亂)과 호란(胡亂)을 한 번씩으로도 부족하여 재란(再亂)까지 겪으면서도 제대로 된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다. 어지간히 못난 나라 조선. 그런 조선이 500년을 지속하였다.

그토록 화려했던 당(唐)나라가 290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명(明)나라는 겨우 277년 존속한다. 근대 이후 500년을 넘긴 왕조가 유럽의 합스부르크 왕조, 그리고 조선이라니, 조선의 생명력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떻게 그리 오래 갈 수 있었을까?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즉위교서가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 줄 듯하다.

“환과고독(鰥寡孤獨)은 왕도정치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니 마땅히 불쌍히 여겨 구휼(救恤)해야 될 것이다. 해당 관청에서는 굶주리고 곤궁한 사람을 진휼(賑恤)하고 그들의 부역(賦役)을 면제해 줄 것이다.”

환과고독은 네 부류의 외로운 사람들이라는 말로,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를 가리킨다. 맹자가 왕도정치를 주장하며 이들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배려를 강조했던 것을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통치하는 요체 중의 하나로 선포했던 것이다. 태조의 교서는 비교적 잘 지켜진다. 조선의 왕들은 지방으로 부임하는 수령들에게 매번 진휼(賑恤)을 강조하였다. 세종은 진휼정책의 수행여부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는데, 고을수령이 진휼을 잘못하여 굶어 죽은 백성이 나오게 되면 경중에 따라 장 1백대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종 때에는 담당 고을 수령의 진휼을 제대로 감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관찰사가 파직되는 일도 있었다. 그 뿐이 아니다.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감찰하게 하고, 지방관의 재량으로는 벅찬 흉년을 당하면 진휼사를 직접 파견하기도 하였다. 진휼청, 상평창, 선혜청 등등의 여러 진휼기관들이 세워지고 운영되었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성이 지독히도 가난한 나라 조선을 5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존속하게 했던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었다면 조선은 민란으로 뒤집혀도 골백번 뒤집혔어야 될 나라이니 말이다.

며칠 전 세 모녀의 비극적인 동반자살소식이 전해졌다. 여론은 들끓고 정치권에선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고 있는데, 정작 해당 관청이나 정부는 꿔다놓은 보리자루다. 보수신문들은 정부를 비판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우리나라의 복지예산이 100조를 넘겼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고.....

얼핏 들으면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처럼 들린다. 정말 그럴까? 보건복지부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이 GDP대비 9.8%에 이르는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의 44.3% 수준이라고 한다. OECD 전체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을 공공복지비로 지출하면서, 100조라는 숫자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5년에서 박근혜정부 1년까지 정부의 친기업 성장우선정책은 실질가계소득의 감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감세정책의 혜택은 고스란히 기업과 부자들이 챙기고, 그 부족한 세수는 봉급생활자와 서민들에게 지우는 것이다. 이명박정부에선 트리클다운효과라는 알아듣기도 힘든 말을 써 가면서 정부의 부자감세 친기업정책이 결국에는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거라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최상위20% 부자는 더욱더 부자가 되었고, 최하위20% 빈곤층은 더욱더 가난해졌다. 아랫목이 따뜻해져서 윗목도 따뜻해진 게 아니라, 윗목의 온기까지 빼앗아 아랫목을 쩔쩔 끓게 만든 것이다. 중간층마저 홀쭉해 졌으니 가운데 어디쯤 엉덩이 들이밀 곳도 없어지고 있다.

공자는 적음을 걱정할 게 아니라 균등하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하였다.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정해지게 되어있다. 불안과 절망은 1‧2차 세계대전 전후로 존재하던 옛날이야긴 줄 알았는데, 21세기 대한민국을 어둡게 덮고 있다. 하여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에, 행복지수 꼴찌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마저도 양극화인가?

옛날에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관리는 즉각 처형되었다. 순(舜)임금 때 홍수조절의 임무를 띤 곤(鯀)이 그 임무에 실패하자 순임금은 곤을 처형한다. 바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말이다.

이제 자살율 1위 국가를 만든 정책담당자들 또한 처형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옛날처럼 저자거리로 끌고 가 목을 칠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의 책임은 물어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은 복지부장관을 즉각 해임하고, 사과하여야 한다. 본인의 책임도 아닌 일로 모 장관을 해임했는데, 이런 복지 사각지대를 내팽개친 복지부장관은 해임이 마땅하다. 아울러 서울시장도 사과해야 한다. 조선의 지방수령 자리는 고을 내 복지를 제1차로 책임지는 자리였다. 하물며 지방자치제 하에서 해당 자치단체장이 중앙정부의 일이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가난한 나라 조선으로 하여금 500년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현대 미국 복지정책의 이론가 존 롤스(J. Rawls)가 《사회정의론》에서 밝힌 분배정의의 원칙이 600여 년 전 조선에서 이미 실천되고 있었던 셈이다.

그토록 없던 시절에도 생활고 때문에 일가족이 동반자살하는 일은 없었는데, 어찌하여 일인당 국민소득 2만4천불의 부자나라에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는지, 이젠 정말로 반성해야 한다. 철저한 반성과 자기비판을 통하여 다시는 이런 외롭고 가련한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이들 세 모녀에게 속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세 모녀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빈다.

-철학박사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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