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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다의 눈물, 소트니코바의 환희를 보며
[특별기고] 김문갑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2014년 02월 26일 (수) 12:04:05 김문갑 meastree@naver.com
스포츠가 아름다운 건 감동이 있어서다. 스포츠를 통해 몸과 마음이 아름답게 피어나기에 감동이 물결치는 거다. 감동이란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편에 나온다. 사람의 마음은 사물에 감응하여 움직이게
   
▲ 김문갑 연구교수
되는데, 이 감동이 소리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음악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스탕달(Stendhal)이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성당에서 귀도 레니(Guido Reni)의 〈베아트리체 첸치〉라는 작품을 감상하다가 온몸에 힘이 빠지는 황홀경을 느꼈다고 한다. 이로부터 스탕달 신드롬이란 용어가 유래하는데, 내 경우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앞에 서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아찔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예술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일찍부터 알려졌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건설을 위해 예술가들을 추방할 것을 주장한다. 예술은 기껏해야 자연을 모방(模倣)하는 것인데, 이런 모방에 마음을 빼앗기면 정작 이데아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을 교육적으로 적극 활용할 것을 강조한다. 예술은 사물의 본질을 재현(再現)하는 것이므로 예술을 통해 그 본질을 배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예술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지배권력의 입장에선 간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중국에서 예술, 특히 음악이 육예(六藝)의 하나로 매우 중시되었던 이유도 교화(敎化)를 위해서였다.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현대에 와서 예술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욱 증폭되고 있다. 특히 대중을 움직여야만 하는 정치인들에게 예술적 이벤트는 대단히 유효한 수단이다. 대중동원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스포츠보다 더 좋은 이벤트는 없다. 그러니 만약 스포츠에 예술이 결합한다면, 더하여 대중매체까지 동원되어 거대한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면 어떻게 될까?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올림픽역사에서 획기적인 이벤트였다. 로마의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스타디움에 그리스 신전을 모방한 웅장한 기둥들, 그리고 곳곳에 빼어난 신체미를 보여주는 커다란 조각상까지 고대 그리스로마문명의 계승자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치들로 하드웨어를 완성한다. 그리고 음악과 미술, 영상이 결합하여 말 그대로 미의 제전을 펼쳤다. 이 모든 일은 매우 유효한 프로파간다로써 시종일관 나치의 계획아래 수행되었다. 나치가 전 세계에 전파한 세계평화주의자라는 이미지에는 악랄한 인종차별주의가 숨어 있었다.

올림픽이 열리기 일 년 전인 1935년 나치는 유대인과 독일인간의 결혼은 물론, 어떠한 성적 접촉도 금지하는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한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3년 후인 1939년 나치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에서 독일국민들은 나치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히틀러는 위대한 지도자로 영웅시 되었다. 나치의 선전선동술은 크게 성공한 것이다.

연아에 홀려 밤을 꼬박 새면서도 소치올림픽이 씁쓸했던 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 아름답지 못한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져서다.
소트니코바의 환희에 박수를 치지 못했던 이유는 김연아 때문에도,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직 소트니코바, 그 어린 소녀가 올림픽이후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아서였다. 이제 겨우 만17세 어린 스케이터는 이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하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차라리 동메달 정도를 땄더라면 다음의 목표가 분명해지고, 성장의 계기가 되었을텐데.... 아직 성숙하지 못한 최고가 되어버린 것이다. 누가 이 어린 소녀에게 그토록 무거운 짐을 지게 하였을까?

아사다 마오에게 지워졌던 짐을 생각해보자. 여린 그녀에겐 숙적 대한민국을 꺾어야만 한다는 일본국민의 여망이 실려 있었다. 김연아가 한국인이 아니었어도 아사다에게 트리플 악셀을 완수해야 한다는 임무가 주어졌을까? 나만의 상상일 수 있다. 다만 아사다의 부모가 기자들을 향해 제발 김연아에 대한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는 기사에서 그저 짐작해볼 뿐이다. 일본 내 우파 인사들과 매체들에 의해 음으로 양으로 주어졌을 압력에 의해서든, 아사다 본인의 의지이든 여린 한 여자가 감당하기엔 분명 벅찬 무게였을 것이다. 소트에서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를 생각하며 진심으로 빌었다. 꼭 트리플 악셀 성공하고 클린 연기로 마무리 지으라고. 그리고 아사다 마오는 해냈고, 그녀의 눈물을 보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국가와 민족은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기지만, 이들은 따지고 보면 역사가 불과 500년도 안 되는 개념들이다. 지금과도 같은 민족국가 개념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앉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1789)이후이다. 대혁명 이전에는 왕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겨야만 했다. 왕조가 사리진 이후에는 나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해 줄 역할을 국가가 수행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국가가 이 일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를 해체시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면 국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국가가 어느 순간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통제하려 든다면 이런 국가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개인이 국가를 해체할 수는 없지만 원하는 국가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진전이다. 더 나아간다면 이제 국가간에 국민들을 모시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마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듯 말이다. 그래서 개인들이 이 나라 저 나라 쇼핑하듯 옮겨 다닐 수 있다면 일본의 망언 퍼레이드로 스트레스 받을 일도, 대통령 잘 못 뽑았다고 열 받을 일도 없을 터다. 하여 오로지 자신을 위해 나라를 바꾼 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런 저런 생각에 나온 김연아의 갈라쇼가 어쩜 그리 시의 적절했는지. 〈이매진(imagine)〉을 통해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가 이 순간만큼이나 가슴에 와 닿은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국가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 봐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어요.
누구를 죽이거나 목숨을 바쳐야 할 일도 없고
……
모든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상상해 봐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아름다운 제전을 위한 서비스에만 충실하길 바란다. 88올림픽 때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판정도, 2008북경올림픽처럼 국가를 과시하는 일도 없기를 빌어본다. 오로지 세계평화라는 인류의 보편가치를 실현코자 하는 염원이 널리 확대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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