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해제일이었던 지난 14일 수덕사 경내에 한 때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고 한다. 수덕사 위 쪽에 자리한 정혜사를 지키기 위해 산내에 총 동원령이 떨어졌던 모양이다. 지난 해 9월 선학원에서 재산관리인 임명을 받은 석청스님이 분원 정상화를 위한 업무인수인계를 이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수덕사에서는 석청스님이 떼로 몰려와 업무인수인계를 실시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삼엄한 경비를 펼친 것이다. 실제로 석청스님은 정혜사는 원천봉쇄돼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수덕사 종무소에 들러 업무협조 요청만 한 채 발걸음을 돌려 나왔다고 전해졌다.

알다시피 정혜사와 간월암은 만공스님께서 중창하신 유서깊은 도량이다. 만공스님은 선학원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신 한국불교의 큰 별이다. 만공스님이 1921년 왜 선학원 창건을 주도하고 설립이념을 대내외에 천명하였는지 후학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31본산 주지회의에 참석해 “전직 테라우찌 총리가 지옥행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일갈했던 만공스님의 기개와 뚜렷한 민족정신은 시대가 흘렀다고 해서 간과돼선 안된다.

이 점을 수덕사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반길만한 사안이다. 그러나 수덕사가 근래 들어 정혜사와 간월암을 놓고 선학원과 대립관계를 빚고 있는 것은 큰 유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선학원과 정혜사·간월암의 역사적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수덕사에서 과거를 부정하고 일체의 간섭을 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소마저 낳게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여기에는 일부 강성론자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덕사가 대외에 공표한 ‘선학원에 대한 수덕사의 요구사항’을 들여다 보면 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우선 선학원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수덕사는 선학원에 대해 “법인법 관련 조항에 의거 수덕사의 임원 추천권을 수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아가 “선학원 설립주체인 만공선사와 수덕사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정혜사와 간월암이 선학원 분원이자 재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고 더 이상 정혜사와 간월암에 대한 권리주장과 간섭을 하여서는 아니될 것”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수덕사는 또 앞으로 “선학원의 부당한 분원장 임명이나 분담금 부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수덕사의 이 주장들은 자기옹호 및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다.

무엇보다 선학원은 정혜사와 간월암에 대한 운영권을 전적으로 수덕사 임회에 일임해 왔다. 역대 창건주와 분원장의 면면은 모두 만공스님 법손이거나 수덕사 문중들이다. 더욱이 정혜사와 간월암 토지와 관련해서도 단 한번도 재단에서 도지(賭地)를 거두거나 사용료 명목으로 돈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 농작 수확물에 대해 단 낟 알 하나도 재단에서 요구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재산을 노리는 음모’ 운운은 가당치도 않다.

재단 운영에 대한 참여문제만 해도 그렇다. 재단 정관에는 특정 문중과 인사에 대한 참여제한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재단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노력하고자 하는 인사에 대해선 문이 활짝 열려있다. 선학원이 1978년 2월 이사회에서 수덕사 측 창립이사 명단을 삭제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분명히 공개해주기 바란다. 1934년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으로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선학원으로서 1978년 창립이사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도 불분명하거니와 이것이 잘못된 조치였다면 시정돼야 마땅할 것이다. 수덕사는 현하 갈등을 빚고 있는 모든 원인과 책임이 마치 선학원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과연 이러한 방법이 바람직한 것인지 스스로 자문해 보길 바란다. 대립 이전의 시간, 즉 이중등록을 취소하고 정혜사와 간월암을 정상화시킨다면 그것이 양자간 ‘윈윈 해결책’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불교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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