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스님의 사상적 교두보는 선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역할의식이었다.”
박재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승려 만해 한용운의 사상적 조명이 그동안 국문학이나 사학 분야에 치우친 것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됐지만, 앞으로 “스님의 불교사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최근 펴낸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을 통해 강조했다.

▲ 만해 한용운 스님 진영.
박 교수는 그동안 학계는 만해 스님에 대한 조명을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집중한 결과, “스님을 시인이나, 사회운동가·민족투사·개화주의자·혁명가 등의 이미지로 굳혀, 사실상 ‘사문(沙門)’이나 ‘선사(禪師)’로서 만해 스님이 지녔을 문제의식과 불교의식에 대해 간과해 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박 교수는 그의 책 《한국 근대불교의 타자들》가운데 ‘선은 선 밖에 있다-만해’편을 통해 주류에서 벗어나 비주류로 밀려난 만해 스님의 사상은 ‘선에 뿌리내린 역할의식’이었다고 규정하고, “ 개화와 식민지가 중첩한 시대 상황에서 ‘사문으로서 만해 스님이 생각했을 자신의 역사적 사회적 역할과 관련된 자의식’”의 발로로 해석했다. 특히 만해 스님의 역할 의식의 근거와 기준은 그만의 독특한 선의식이었고, 이는 여느 개화지식인이나 유가 지식인과는 구별되는 점이라고 해석했다.

박 교수는 만해 스님의 불교관련 저술 가운데 선사상이 직접 노출된 근거로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들었다. 만해 스님은 일본 조동종에 맞서 조선 임제종운동을 발기한 장본인으로 《십현담》은 조동종 문헌이란 점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만해 스님이 조동선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를 ‘한국 종동선 전통에서 임제선과는 다른 경향성을 발견하고 공감’했을 가능성과 ‘일제에 저항했지만, 선진문화와 문물에 대한 관심으로 일본 개화과정에서 조동종이 일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보았다. 실제 만해 스님은 1908년 4월부터 10월까지 반년동안 일본 조동종 종립대학에 유학하고 일본을 주유한 이력이 있다. 박 교수는 “조동선에 주목한 만해 스님이 조선 선불교의 사상적 근간인 임제선을 새롭게 판단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 이유를 당시 조선 선불교의 ‘절속(絶俗)’과 ‘현실도외’를 비판적으로 보고, 이를 재정립하기 위해 ‘십우도’해석에 반영했을 것으로 본 것이다.

▲ 심우장 사진=문화재청

박 교수는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외에도 1937년의 잡지 《불교》에 발표된 〈심우장설(尋牛莊說)〉 발표에 집중한다. 만해 스님은 이 글에서 심우장을 마련된 이유를 세인들이 궁금해 한다면서 〈십우도〉의 내력과 중국 임제종의 곽암 선사의 송(頌)을 열 가지 그림에 곁들여 소개한다. 곽암 선사의 〈십우도〉에서 중생제도의 의지의 근원은 깨달은 자의 자의식이다. 임제종의 전통에서 〈십우도〉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는 깨친자의 무애(無礙)와 자재(自在)를 의미한다. 박 교수는 여기에 주목한다. 박 교수는 “만해 스님은 곽암 선사의 설명에 이의제기는 없지만, 〈십우도〉가 깨달은 자의 우월의식이나 구원의식을 강조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았다. 박 교수는 이점에서 “우월의식 보다는 동참의식 쪽으로 물꼬를 돌려놓으려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입전수수’의 의미를 자비심으로 읽고 고해중생을 제도하는 모습으로 이해하고, 이를 위해 만해 스님은 재투성이 흙투성이 얼굴로 묘사한 것을 입니입수(入泥入水)로 바꾸었다는 것.

박 교수는 “《십현담》〈회기〉편과 〈십우도〉입전수수편을 비교하면, 전자는 보살행에 비중을 둔 반면, 후자는 수행자의 무애자재한 의식을 강조한다.”며 “만해 스님의 〈십우도〉읽기는 조동종의 역할의식 반영됐다.”고 했다.

만해 스님은 선을 선 밖의 선[禪外禪] 혹은 활선[活禪]이라 했다. 당시 임제선의 문제를 폐쇄적인, 순결주의와 근본주의적 성격에서 온 정통성 의식과 선민의식, 배타주의 몰 역사성이 계통 없이 뒤섞인 탓으로 보았다. 만해 스님은 “활선은 선 근본주의적 태도에 대한 경계의 성격이 짙어서, 선이 특정종교의 전유물일 수 없으며,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정신수양법”이라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만해 스님의 사상에서 개화의식이나 민족의식 못지 않게 선의식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박 교수는 만해 사상의 이해는 선사상과 사회사상의 접점을 찾는 대서 시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스님이 생전에 타진한 임제선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현실적 대안으로 찾은 조동선은 일제 종교정책의 선봉에 선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조선 임제종에 새로운 역할 의식을 깨워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 주목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근대 개화기를 산 지식인 승려들에게서 선의식과 역할 의식은 분명한 구분이 있지 않지만 이 둘의 접점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냈는가 하는 주제의식이 근대 불교를 읽어내는 과정에서 절실한 연구과제”라고 지적했다.

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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