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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고기일 뿐인가?-닭들의 대량 살처분 유감
[특별기고-김문갑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2014년 02월 13일 (목) 17:12:59 김문갑 meastree@naver.com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이 전한다.

이른바 계유오덕(鷄有五德)으로, “머리에 관(冠)을 썼으니 문(文)이요, 발에 갈퀴를 가졌으니 무(武)요, 적을
   
▲ 김문갑 교수
만나 용감히 싸우니 용(勇)이요, 모이를 보면 서로 부르니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알려주니 신(信)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였을까? 예로부터 닭은 시인묵객들의 주요한 소재가 되곤 하였다.

조선 중기의 문신 동주(東周) 이민구(李敏求) 선생이 영변에 유배 갔을 때의 일이다. 유배지의 쓸쓸함을 읊을 때면 으레 닭이 등장하곤 하는데, 적막이 싫어서였을까? 이 분은 아예 닭을 기를 요량으로 관에 편지를 보내 암수 한 쌍을 얻는다. 부화시켜 이웃에 나눠도 주며 좋았는데…… 한 번은 닭병이 돌아 불과 열흘 만에 기르던 닭 18마리가 다 죽고 만다.

붉은 벼슬 날로 초췌해지더니 朱冠日慘悴
오덕이 모두 사라졌구나 五德俱沈淪
차례로 열여덟 마리가 次第十八翮
피하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零落莫逡巡
……
마시고 쪼던 모습 눈에 선하여 飮啄森在眼
나그네 마음 아프게 한다 足傷旅遊神
늙고 병든 몸 잠은 없고 老病常少睡
고요한 밤에 쓸쓸함이 넘치는구나 夜靜浩悽辛
― 이민구, 〈계역(鷄疫)〉 부분

역병에 걸려 죽은 닭들을 다 묻어준 날, 닭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밤의 적막함이 얼마나 깊고도 괴로운 것이었는지를 조금은 짐작할 것 같다.

요즘 조류독감(AI)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당국은 AI로 판명되면 반경 3km 이내의 닭은 모조리 살처분하고 있다. 이게 과연 능사일까? 동주선생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닭병은 고래로 무수히 있어 왔다. 예전의 닭 돌림병 중에 지금의 조류독감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닭이 인류와 공존한 이래 무수히 많은 닭들이 전염병으로 죽어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닭들은 살아남아서 잠 못 이루는 시인의 고독을 달래주고, 인류에게 중요한 단백질을 제공해 왔다. 오늘날에는 그저 고기로만 바라볼 뿐, 닭의 오덕은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게 심히 유감이지만 말이다.

결국 건강한 닭은 살아남아 다시 자손을 번창하고 인류에게 좋은 영양을 제공하여 왔다. 그런대 모조리 살처분이라! 왜 살아남을 수 있는 닭까지 죽여야만 하는지, 나 같은 샌님은 도통 알지 못하겠다. 다만 양계 선진국에선 이러 무자비한 살처분은 하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병에 걸리지도 않은 닭을 왜 그냥 땅에 묻나? 설혹 전염된 닭도 푹 삶으면 아무 문제없다는데, 가공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주변에는 여전히 배고픈 이웃이 산재해 있지 않은가.
닭공장이라 하는 사육장에서 키워지는 면역력 약한 닭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건강하게 뛰어다니며 크는 닭은 그냥 두어도 될 것 같다.

설혹 그들이 AI에 걸려 죽어나가도 살아남은 몇 마리는 분명히 있을 것이고, 이 건강한 닭들이 다시 자손을 번성하면 결국 AI도 이겨내지 않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닭에 대한 역병이야기가 별로 없다. 옛사람들은 닭병이 돌면 그냥 두었지, 지금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는 얘기다.

옛날에 스님들은 석장(錫杖)을 들고 다녔다. 지팡이 끝에 여섯 개의 고리가 달려 있어 육환장(六環杖)이라고도 하는데, 발걸음 따라 짚을 때마다 철컥철컥하는 소리를 낸다. 이 소리를 듣고 뱀이나 벌레들이 미리 피하라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미물에게까지 미치는 부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상징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대량 살처분이 가당치나 했겠는가. 요즘은 이런 석장 들고 다니는 스님을 구경하기는 힘들다. 다만 법석(法席) 위에서 위엄을 보일 때 사용하는 정도로 남아 있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할 뿐.

어느 산사인고 은은한 저 종소리 齋鍾隱隱何山寺
어디 가는 승려인고 석장도 가뿐가뿐 杖錫翩翩底處僧
돌아갈 길 덩굴 덮여 어둡다 저어말라 歸去莫愁蘿逕黑
층암절벽 석양빛 아직 남아 있나니 夕陽猶在斷巖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한문4대가(漢文四大家) 중의 한 분으로 꼽히는 택당(澤堂) 이식(李植) 선생의 〈귀휴정 팔경(歸休亭八景)〉에 나오는 시다. 저물녘 석장 쩔렁대며 산사로 돌아가는 스님의 가벼운 발걸음과, 정자에서 이를 바라보며 시 한 수 읊는 유학자의 여유가 고스란히 와 닿는 듯하다.

그런데 당시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시대를 살면서 우리들은 어째 이런 여유가 없나? 닭에게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는 기회를 줘보자. 그게 우리들에게도 삶의 여유를 가져다 줄 거라 믿는다.

-철학박사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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