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도 법회와 공개 강연 일정을 끝내고 왕궁이라고 칭하기엔 소박한 다람살라의 처소에서 휴식중인 달라이라마(뗀진갸초, 79). 그는 지난 17일 티베트에서 인도로 망명한 난민 20여 명과의 만남을 마지막으로 2주간의 안거에 들어가 있다. 2월부터 시작되는 인도 북동부 아삼 지역의 법회를 시작으로 3월에는 미국에서 티베트 새해인 로사를 맞이한다는 계획이다. 때문에 달라이라마와의 공개 만남은 앞으로 티베트 새해로부터 보름 후에 열리는 3월 중순 경의 《본생담》 법회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달라이라마는 자비심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그 예로 어머니를 주로 떠올린다. 실제 달라이라마의 어머니(디끼체링)는 아버지(최콩체링)에 비해 주도력이나 생활력이 매우 강했던 분으로 그려진다. 친어머니의 임종 당시 인도의 보드가야 지역 법회에 참석 중이었던 달라이라마는 결국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던 당시의 감정을 침묵의 쉼표로 표현한 바 있다.

세상의 생명 지닌 모든 이들이 내 과거 전생에 어머니 아닌 이가 없었다는 마음으로 삶을 대하는 것이 바로 자비심이라는 말하는 달라이라마. 여느 티베트인들에게 어머니란 보다 척박한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하는 지혜를 가진 망명 1세대의 개척자로 묘사되고는 한다.

▲ 티베트국기로 모자를 뜨개질해 파는 망명정부 1세대 어르신. 그녀의 깊은 주름 속에서 지난 반세기 인도 난민사를 느껴 본다.

 

다람살라에 거주하는 티베트 청년 텐진(32)은 “십대에 인도로 망명한 어머니는 북인도 로땅의 고산에 아스팔트 도로를 내는 일의 인부로 일을 했었죠. 당시 아버지와 만나 스웨터 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겨울 3개월 동안 인도에서 일교차가 심한 지역인 아난드 또는 앰다바드 같은 곳으로 옷을 팔러 나갔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저를 대학까지 졸업시켰습니다”라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또 다른 청년 소남(30)은 한때 가족이 살던 난민 마을이 강을 사이에 두고 무슬림과 힌두교의 갈등이 있었던 소년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학교에 있는데 선생님이 모두 짐을 싸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라고 소리를 쳤어요. 당시 여동생도 같은 학교에 있었는데 겁을 먹고 집으로 가는 내내 계속 울었죠.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짜파티(인도의 납작한 밀가루 빵)를 얼추 100여장은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어요. 그 빵을 이불보에 싸서 등에 지고 강 너머로 피신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 사이에서 티베트인들은 숨죽여 있어야만 했는데 마을 곳곳이 불에 타고 아수라장이 됐죠. 일주일 정도 강어귀에 숨어서 마을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던 것 같아요.”

▲ 다람살라의 겨울은 어머니들의 손뜨개질로 하루하루가 가고 있다.

 

겨울의 다람살라를 거닐다보면 눈에 띄는 독특한 풍경들이 있다. 바로 티베트 여인들의 뜨개질하는 손이다. 네팔 공장에서 도매로 가져온 숄을 팔면서 양말과 모자 그리고 덧신과 같은 소소한 방한 용품을 수작업해 팔고 있다. 숄 위에는 스티커로 티베트라는 마크가 붙어 있지만 이것이 과연 티베트인들에 의해서 자체적으로 가공된 것인지는 당장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방한용 덧신과 같은 경우에는 한 켤레에 200루피(한화 3천500원)씩 하는데, 갓난아이들을 위한 것부터 성인용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보온력도 뛰어나서 수면 양말로는 제격이다.

그 가운데 티베트 국기를 모자로 뜨고 있는 한 어르신이 눈에 띄었다. 성스러운 국기를 어떻게 모자로 만들어 쓰고 다닐 수 있을까. 한 때 달라이라마의 모습을 신발에 그려 넣은 제품이 키치(Kitsch)라는 저속한 예술의 한 장르로 해석되어 외신에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 다람살라 티베트 망명정부에서는 그 의미가 다시금 새롭게 다가왔다.

‘SAVE TIBET(티베트를 지켜주세요).’ ‘FREE TIBET(티베트에 자유를 주세요).’

티베트가 지켜지고 자유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한 땀 한 땀 뜨여진 모자로 완성되어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에 의해 구매되고 그들이 머물던 본래 장소로 이동되었을 때 이보다 티베트를 쉽게 알리는 민간 호소가 있을까 싶어졌다. 얼마 전 인도의 유명한 록그룹 빠릭라마(PARIKRAMA)가 다람살라에서 공연을 연 때에도 티베트의 국기가 그려진 옷을 입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공연은 인터넷 유투브(Youtube)를 통해 생중계되기도 했다.

▲ 인도의 유명한 록그룹 빠릭라마(PARIKRAMA)이 티베트국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공연을 펼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해외를 돌며 티베트불교와 문화를 알리고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부터다. 스위스와 프랑스, 캐나다와 미국이 여느 아시아의 국가들과 달리 티베트 난민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바로 달라이라마 외교의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현재 벨기에 정부는 잠정적으로 티베트 난민을 자국에 수용하는 것을 중단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으나 이미 상당수 많은 티베트인들이 벨기에에 정착해있다.
티베트 1세대 어머니들의 뜨개질처럼 그렇게 한 땀씩 티베트는 망명정부의 이름으로 세계와 존속해 가고 있다. 오늘의 티베트가 21세기의 인권과 자유의 상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는데 4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바과 같이 언젠가 실현될 희망을 향하여 다람살라의 겨울은 그렇게 나고 있다.

인도 다람살라= 가연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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