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은 일반적으로 스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는 뜻에서 식사를 베푸는 종교행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의식은 불교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부터 널리 유행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사찰의 낙성식이 있은 다음 국왕이 직접 반승을 베푸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반승이 끊임없이 뒤를 잇다시피 개최되었으며, 그 규모도 매우 성대하였다.

『고려사』와 같은 고려시대 사료에 의하면 1018년(현종 9) 5월에는 왕이 궁에서 10만 명을 반승하였고, 문종 때부터는 국왕이 사찰로 행차하여 그곳에서 반승을 열기도 하였는데, 1098년(숙종 3)에는 흥왕사(興王寺)에서 3,000명의 승려를 공양하였다.

국왕이 시주가 되어 궁중 또는 사찰에서 수시로 베풀어진 반승은 단순한 스님의 공양만을 목적으로 하여 열리지는 않았다. 사찰의 낙성과 불상의 조성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경찬법회(慶讚法會)를 비롯하여 죽은 이의 명복을 비는 휘신도량(諱辰道場), 장수를 축원하는 의식인 축수도량(祝壽道場), 『인왕경』을 읽으며 호국을 기원하는 의식인 인왕백고좌도량(仁王百高座道場), 경전을 독송하는 의식인 장경도량(藏經道場) 등 각종 법회가 있을 때에는 그 의식의 절차로서 대개 반승이 함께 열렸다.

반승은 불교가 크게 쇠퇴했던 조선시대에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폐불(廢佛)과 훼불(毁佛)의 군주 태종(太宗)과 연산군(燕山君)조차도 스님들에 대한 공경의 예로 반승을 베풀었다.

오경후/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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