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출판문화정책은 과연 있는 것인지? 새해 벽두부터 새삼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출판이 단순히 책을 찍어 돈을 버는 장사가 아니란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고급스러운 문화의 창출이란 역사적 사명을 운운하기도 한다. 그런데 종단 차원의 출판정책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묻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은 있는지 모르겠지만 분도출판사라고 있었다. 대학시절 이 출판사에서 간행된 책들을 많이 읽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들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의 문화와 정치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서양철학과 관련해선 서광사라는 출판사에서 간행된 책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기억이 아스라하지만 꼭 필요한 책들을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 보급했다고 생각한다.

출판도 자금이 필요한 사업이라 마냥 양서를 출판할 수만은 없다. 양서란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책들을 지칭한다. 그런 점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의 문화발전에 공헌하겠다고 출판업에 뛰어들었던 선배를 통해서도 피부로 경험했다. 미천한 자본을 가지고 이상적인 출판 사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갈증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 불교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문화사업, 그 중에서도 출판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적극 참여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도 결국은 자금과 직결된다. 물론 필자의 능력과 용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면 변명의 여지는 없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식주를 해결하면서도 사회에 꼭 필요한 서적을 출판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현재 필자가 서 있는 자리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불교계에도 많은 출판사들이 있다. 모두 사명감을 가지고 교계 내지 사회에 필요한 서적을 출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고에 대해 언제나 감사와 경외심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불교출판의 한계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출판비용에 비해 금전적인 피드백은 작지만 반드시 필요한 책들이 출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출판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현실은 언제나 뒷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더는 뭐라고 탓할 수 없기도 하다.

그런데 불교계의 출판계에 희망의 등불처럼 다가온 것이 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출판사를 설립하여 전문서적을 출간할 계획이란 기사를 읽었을 때의 일이다. 물론 이처럼 희망적인 기대는 오래지 않아 실망으로 변하게 되었다. 바램이 큰 만큼 실망도 커서 때론 이 출판사의 존재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했다.

조계종출판사의 역할은 한국불교가 현대산업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다지는데 기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축적된 역사적 문화적 자산을 이 시대를 사는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고 공유할 수 있는 지적 정보의 산실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금전적인 보답으로 되돌아온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양서를 발간해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계종출판사에 대한 희망을 접은 지는 오래다. 새 문화 창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이란 울타리 안에서 손쉽게 이익을 창출하는데 급급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물장사, 기름장사, 사보장사, 카렌다 장사 등등. 장사가 우선이고 문화 중흥은 흔적도 없다. 출간되는 책 중에는 양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꼭 조계종출판사가 아니더라도 간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들리는 말에는 종단의 방침이라 하지만 결국은 종단 주변의 영세업자들이 하던 것을 조계종출판사가 빼앗아간 것으로 본다. 종단이라는 우월적인 갑의 지위를 활용해 종단 내지 사찰 주변에서 공생하는 영세업자들의 일터를 빼앗고 있다. 그러면서 동행이라 한다면 누가 박수치며 동의할 것인가? 출판의 본질이 돈을 버는 일이라면 그것은 조계종이란 종단을 업고 할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서의 보급은 문화의 흐름을 바꿀 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를 위한 나침판이기도 하다. 영세출판업자가 할 수 없는 일을 종단이 앞장서서 출판할 수 있다면 환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종단 지도자들은 종단출판사의 방향을 재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수익이 목적이 아닌, 한국사회의 문화증진과 불교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출판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차차석/동방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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