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차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불교 차 문화를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다양하게 제기된다. 불교 차 문화는 한국 차 문화를 이끌 정도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으며 차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불자들인 점은 누구나 공감한다. 하지만 불교 차 문화에 대한 정형이 아직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지만 아직 구슬을 꿸 수 있는 방법을 못 찾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불교 차 문화를 올바르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극복해야 한다. 우선 우리의 차가 외국차에 너무 잠식돼 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는 중국차의 범람으로 우리 차가 설 공간이 협소해졌다는데 있다. 아직 과학적인 수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차인들은 우리 차 시장의 중국차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급한 중국차는 우리 차보다 더 고급스럽게 취급되는가 하면 가짜가 진품으로 취급되어 천정부지의 가격을 호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생긴다. 차계의 한 스님은 “소위 보이차라고 하는 중국차는 99%가 가짜라고 보면 된다”며 “전문적인 중국 차인도 실제 인사동에 와 보고 가품(假品)이라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추이가 이러다 보니 반쯤 만들어진 우롱차가 완제품으로 둔갑되어 수입되는 경우도 있고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100년 됐다는 중국차가 시중에 유통되는 현실은 안타깝기만 하다.
중국차의 범람에는 우리 차의 다양한 제품개발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차 문화도 여유시간을 가지고 즐기는 문화이기 때문에 상품으로 개발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차는 제품개발에 있어서 중국이나 일본 대만에 비해 뒤쳐져 있다는 게 현실이다.

대중화와 국제경쟁력 담보
우리 차의 경우는 대부분 잎차를 가공한 차가 많지만 다른 나라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차에 향료를 첨가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대부분 첨가제가 없는 수제차가 최고의 차로 취급되지만 이런 인식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앞으로 차는 빵이나 밥 등에 첨가제로서도 각광받을 것”이라며 “우리 차도 이제는 보건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말했다. 대부분 어린 싹을 수확해서 차를 만드는 것도 보건학적으로 볼 때 차의 본연의 성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다고 하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는 점은 우리의 ‘차 문화 보기’가 좁은 견해(管見)임을 보여준다.
우리 차는 가격 면에서도 중국차의 8배, 10배가 넘는다. 차나무를 심은 지가 오래 되지 않고 차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한 이유도 있겠지만 차를 즐기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며 저마다의 차가 신비한 비밀이 있는 것처럼 여기는 풍토는 차의 가격을 평균적으로 올린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우리 차는 국제시장에서 소위 ‘명함’내밀기가 어려운 실정이며 오히려 외국의 차가 역수입되어 우리의 차 문화를 잠식하고 있다.
차는 특권층의 향유물이 아니고 ‘1만 불 시대’를 사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대중문화라는 인식으로 차를 즐기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한다. 또한 우리의 차가 국제경쟁력에서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우리 차가 국제시장에서도 가격과 품질에서도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겠다.

차 공양의식 회복
또 하나 극복되어야 할 점은 우리의 차 문화가 너무 차 마시는 행위[行茶]에만 치우쳐 있어 차를 마시는 본질[올바른 차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다도(茶道)는 차와 물의 조화이며 이를 행하는 것이 다례법(茶禮法)이다. 이러한 다례법은 과거 유학의 양반가에서는 행다를 통해 인격을 닦아 군자의 덕목을 실현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으며 왕실에서는 왕도정치를 두었다.
불교에서 차를 마시는 다법(茶法)의 궁극은 자신의 마음을 닦아 견성성불(見性成佛)에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대자대비의 실천하는 보살도의 발현에 둔다.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이 말해주고 있듯이 불교 차 문화의 바른 정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선일여의 궁극을 실현하기 위한 다도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교 차인들이 의견을 모아 불교 다도의 정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여겨진다.
또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될 일은 현재 불교계의 일상의례에 행해지지 않고 있는 다례를 회복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불가에서는 큰 행사 때나 육법공양으로 차 공양을 올릴 뿐 조석 예불시에 부처님 전에 차를 올리는 의식이 있는데도 차를 부처님 전에 올리는 사찰이 적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차가 우리 땅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즉, “불교 차 문화를 한 단계 성숙시켜 문화포교방법론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불교 차 문화의 정형화를 도모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다양한 논의의 자리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제 차 문화, 특히 불교 차 문화는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문화포교방법론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과제가 우리 앞에 서 있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지는 우리 불교인의 노력에 달려있다.

편집실/

茶문화운동으로 전개해야

다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문화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녹차를 마시는 인구가 천만에 이르렀다고 한다. 전국에는 수백 개의 다회가 있고, 전국 규모의 협회도 여럿이다. 차 전문 잡지가 몇 종이나 되고, 또 학술지도 꾸준히 간행되고 있다. 차와 다구를 파는 가게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차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새롭게 반성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즉, 지금의 한국의 차 문화는 단순히 차를 끓여 마시는 일만이 아니라, 차의 생산과 유통, 다구의 개발과 공예의 진흥, 다도정신의 탐구와 유포, 학문적인 연구와 생활화를 위한 대중적 보급 등 종합적인 문화운동으로 전개해야 시점을 맞았다.
음다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차의 생산량이 부족해서 해마다 상당량의 차를 수입하는 문제는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한다. 또 다양한 차가 생산되어야 하고, 경쟁을 통해서 뛰어난 품질의 차가 만들어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불교계에서는 전통적으로 음다의 풍습이 성행한 곳이 주로 사찰이며, 스님들이 주도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즉, ‘끽다거’라는 화두를 상기하고 ‘다선일미’의 정신을 토대로 적극적인 포교나 교화의 방법으로 다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불교를 생활 문화에 접목하기 위한 구체적 수행 방법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최근 천주교나 기독교 등 여러 종교에서도 차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차를 통한 종교 간의 대화와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욱 유의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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