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새로운 상품을 ‘신상’이라 부르며 맹목적으로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통용되기도 하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움은 그 의미를 규정짓기가 쉽지 않은 개념이 되어 버렸다. 그 새로움은 한편으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설렘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우리 주변에 머물곤 하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구비에서는 무언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작은 압박감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물론 ‘서기 2014년’은 인위적인 구분의 한 지점일 뿐이다. 나 자신의 삶이 타자와의 연계성 속에서만 가능하고 이 찰나(刹那)의 존재성이 존재의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교적 사유에 토대를 두고 나면, 2014년이라는 달력의 구분은 그저 인간들의 생멸을 억지로 분리해내는 장난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구분을 쉽게 넘기지 못한 채 걸려 넘어지곤 한다. 환송회를 하고 신년회를 하면서 얻는 위안이 크지 않음을 알면서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무명(無明)을 전제로 하여 펼쳐지는 우리 숙명의 한 모습일 것이다.

이런 전제를 깔면서도 굳이 ‘새해’를 화두로 삼는 이유는 팍팍하게만 느껴졌던 지난 한해에 대한 회한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열망 때문이다. 2013년은 국가적으로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여 ‘새로운 정치’를 펼쳐주었으면 하는 열망으로 시작되었던 해이고, 불교계 안에서도 도덕성과 수행력을 기반으로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는 지도자가 나타날 수 있기를 기원했던 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둘 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숫자만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길은 없다. 이른바 세계 10위권 수준의 경제력이라는지, 일인당 국민소득 몇 만불이라는 지표가 허망한 구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양적으로는 충분할 만큼의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지표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런데 그에 걸맞는 행복감이나 도덕적인 수준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긍정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 오히려 불필요한 경쟁을 내면화하여 유치원 시절부터 다른 사람을 딛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일상화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부모와 교사가 내세운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쉽게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도덕적 무감각만 더 강화시켜 탈핵문제와 같은 가까운 문제조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작은 편리함에만 몰두하는 소시민을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들의 마주하기 두려운 자화상이다.

이런 우리들에게 어떤 희망과 새로움이 가능한 것일까? 지난 한 해가 이 물음에 절망적인 답이 더 많이 주어진 한해였다면, 올해는 어떤 점에서 긍정과 희망의 씨앗을 마련해볼 수 있을까? ‘새해’라는 화두는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궁그리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먼저 우리가 미워하고 비판하는 지도자나 주변 사람들이 나와 분리되어 있는 존재자들이 아니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자세를 근간으로 삼아 그들의 판단과 행태를 비판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지지해주기도 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이다.

박병기/한국교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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