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TV ‘느낌표’를 통해 소개된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로 친숙한 기용건축 정기용 소장. 그가 4월 1일 ‘더블어사는 삶의 건축’을 주제로 참여불교재가연대 ‘리더스포럼’ 연단에 섰다. ‘흙 건축의 대가’, ‘한국 건축계의 공익요원’으로 알려진 그에게 삶이 살아있는 공간으로서, 함께 만드는 공간으로서의 ‘집짓기 이야기’를 들었다.

집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의 바람과 목적이 실현된 결과이자 새로운 삶을 조직하는 바탕이다. 마당이 있는 집과 없는 집의 차이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어 건축으로 드러나고 다시 삶으로 이어진다.
‘나의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정 소장의 집은 백만 평이다. ‘방’은 종로구 명륜동에 세 들어 사는 서른한 평 다가구 주택이고, 정원은 성균관대 입구에 있는 명륜당 앞마당이다.
뒷산으로 오르면 종묘와 창덕궁, 창경궁과 창경궁의 후원이 맞닿는 와룡공원에 서면 서울의 아늑한 전경이 펼쳐진다. ‘방’에서 혜화동 한국방송대학 옆에 있는 기용건축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닿는다. 그래서 그의 집은 백만 평이다.
그는 1945년 광복이 되던 해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공예를 전공했다. 이후 미의 분배와 사회적 유용성,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사유 끝에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장식미술학교 실내건축과, 파리 6대학 건축과, 파리 8대학 도시계획과를 졸업하면서 건축가가 되었다.
처음으로 의뢰를 받아 건축 일을 했던 것은 파리에 머물던 1978년. 귀국해서는 계원예술대학, 서울예전드라마센터 레노베이션, 효자동 사랑방, 무애빌딩, 무주의 공공시설 31곳 등 건축뿐 아니라 ‘느림의 도시 순천’ ‘무주 기업도시’ 등의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더불어 춘천 자두나무집, 영월 구인헌 등 개인 주택 작업이나 지평선 중학교 기숙사 작업 등을 통해서는 흙 건축의 현대화 작업에 지속적으로 매진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정 소장님에 대해 ‘흙 건축의 대가’라고 말하곤 합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오해입니다. 흙 건축은 정기용 건축의 한 부분이지 전체는 아니에요. 건축이라는 말도 좀 그래요. 건축을 하는 데 흙을 쓴 것이지, 흙 건축을 한 건 아니니 ‘흙 건축을 합니다’ 하는 것은 좀 과장된 것 같아요. 제가 친환경 건축, 생태 건축의 전문가도 아니거든요. 그저 우리나라 풍토에 맞는 올바른 건축을 하려다 보니 흙도 동원하고 때로는 나무도 동원하게 되는 것이죠. 흙으로 모든 건축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에요.”

△“다른 건축가들에 비해 흙 건축 작업을 많이 하셨지요?”
▲“몇 개 더 한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정기용 건축을 규정하려는 것은 오해지요. 흙 건축이 위대한 건축이 아니라거나 그런 호칭이 싫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이 정기용의 건축 세상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 같아 그래요. 한국에서 건축하는 사람이 흙을 주제로 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흙을 주제로 삼는 건축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니요?”
▲“한국 땅에 살던 선조들이 건축 소재로 쓰던 것이 나무하고 흙이거든요. 그러니 그 후손이 건축에 흙을 쓰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다만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가 흙 건축을 탐구하게 된 것은 화가 나서다.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1980년대, 흙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자료를 찾았는데 도무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흙과 나무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기본 소재. 이토록 중요한 소재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목마른 이 우물 판다고, 직접 찾아다니고 공부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흙 건축에 대해 열심히 하세요?”
▲“흙과 나무에 대한 연구가 이미 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없다는 데 놀란 거죠. 그러니 어떻게 하겠어요. 직접 배우고, 흙으로 요새 사람들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건축을 할 수 있는지 실험도 해보았지요.”

△“함께 만드는 공공건축에도 관심을 쏟고 계시죠?”
▲“건축가는 공공의 삶을,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도대체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건축가는 적어도 무슨 일을 주문받았을 때, 이것이 사회가 요청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구분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건축을 하는 건축가만이 아니라 모든 건축가가 기본적으로 보살피는 마음,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보살펴서 서로 나누고 행복 하게 살게끔 해야 합니다.”

△“공공건축을 얘기를 하면서 ‘기적의 도서관’을 제외하고 갈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공공건축은 건축가 혼자, 관청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진정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건축가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사회를 위한 건축에 제대로 답해주는 사람입니다. 공공건축은 위대한 건축가에 의해서 탄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서관이 없는 나라가 나라냐’며 도서관을 만들자고 노력해온 시민단체, 십 여 년 동안 10평, 20평의 작은 공간에서 홀로 작은 도서관을 계속해온 아줌마들, 부지와 공사비 절반을 대준 관청, 방송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 끝에 어린이 도서관이라는 것에 주목한 매체, 지역시민들의 역량이 연대해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건축가로서 정 소장의 역할은 ‘위대한 창조자’가 아니라 ‘Social Coordinator’이다. 그래서 그에게 건축은 자신과 타인·사회·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의사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소중한 3차원 공간인 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건축 설계와 이론을 가르쳤던 그는 지난해 초 성균관대 석좌교수로 부임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 작업으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 주택, 정읍 기적의 도서관 등이 있다.

오종욱/본지 편집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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