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4천불을 넘어섰다고 한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하면 9만6천불이니 현재 환율로 대략 1억이 넘는 돈이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1억을 버는 집은 별로 없어 보인다.
▲ 김문갑 박사


한때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어섰다며 선진국이 되는 날도 멀지 않았다는 희망이 나라 안에 가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를 목청껏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선진국의 바로미터라는 2만불을 목전에 두고 어지간히 배회하다가, 이제 드디어 선진국이 되었다는데, 국민들은 우울하다.

지난 정부는 선진국 진입을 호언장담하였고, 우리 국민은 압도적인 지지로 호응하였다. 그리고 결국 선진국 진입을 완수하고 그토록 앙망하던 국격을 이렇게 높여 놓았거늘, 그때의 인사들은 묵언수행중인지 도대체 코빼기가 안 보인다. 지금 정부도 크게 환영하며 자축하는 분위기도 아닌 것 같고, 왠지 썰렁하다.

따지고 보면 애시당초 선진국 여부를 돈으로 계산한 게 착각이었다.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선진국여부를 가린다면, 저 중동의 산유국들은 일찌감치 되고도 남았다. 하기사 어렸을 적 한때 쿠웨이트란 나라를 어지간히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첫째 기준은 사회적 약자, 혹은 소수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그 나라가 이른바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얼마만큼이나 배려를 해주느냐가 선진국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라면,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해서 부러워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 예컨대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유럽의 선진국들은 동성간의 결혼을 허용하여, 이들이 합법적인 부부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해 준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지극한 것이다.

이런 사회적 배려에 남아공이나 심지어 우루과이 같은 나라들도 동참한다는데, 일인당 국민소득 2만 4천불 시대를 연 우리는 어떨까? 동성간의 합법적 결혼은 말조차 꺼낼 분위기도 안 되고, 종교적 신앙에 따른 군 대체 복무는 오래전에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생도가 애인과 성관계를 하였다고 하여 퇴학처분을 내린 육군사관학교가 1심은 물론 항소심에서도 학교 측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한다. 중앙대에선 청소하는 아줌마들이 대자보를 붙이면 100만원, 구호를 외쳐도 100만원씩 배상을 물리겠다고 하고..... 따지고 보면 당연하다. 정부가 앞장서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고 있으니 아랫것들이 따라하는 거야 자연스런 현상 아닌가. 얼마나 보기 민망했으면 국제 앰네스티가 한국 정부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존중하라는 성명서를 냈을까.

지난해 마지막 날, 한 분이 분신으로 생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그리고 새해 첫 날 결국 그 분은 돌아가셨는데, 경찰은 이 분이 빚쟁이로써 불과 일주일전에 보험 수급자를 동생으로 바꿨다고 잽싸게 발표했다. 그리고 정말 잽싸게 주요 언론들은 경찰발표를 그대로 보도했다. 언론이 앵무새가 된지 오래전임을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그 신속 정확함에는 감탄이 안 나올 수 없다. 제4의 정부라는 언론의 협력을 바탕으로 국가가 한 개인의 명예를 이토록 신속하게 추락시키는 나라가 과연 선진국일까?

대통령께선 “비정상의 정상화”를 원칙으로 제시하셨다. 당연한 말씀이다. 문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인지되는데 있다. 정부측이나 사용자의 정상은 노동자들에겐 비정상이고, 노동자들의 정상은 정부나 사용자에겐 비정상인 상황이 현재상황이다. 이럴수록 대통령은 그토록 좋아하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상적인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자유를 보장하는 데에 앞장서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적어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4천불 되는 국가라면,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감싸주는 게 정상이다.

요즘 변호인이란 영화가 흥행몰이중인데, 이 영화에 나오는 “국민이 곧 국가”라는 대사가 왜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우는지를 깊이 헤아려야 할 것이다.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아! 그런 대한민국은 정녕 꿈이런가.

불경에 전하는 유명한 이야기로 정성을 다해 꺼지지 않는 등불을 켠 가난한 모녀의 이야기가 있다. 이를 국가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가난한 국민들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야 함을 함축한다. 그럴 때 국가에 주어진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에 약한 등불들이 국가에 의해 꺼져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철학박사 ·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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