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그 마음으로 만물을 두루 덮어도 무심하고, 성인은 그 정으로 만물을 따라도 무정하다.
—정호

1. 주자와 육상산, 성인은 아무나 되나?

1175년. 중국의 강서성 연산현(江西省 鉛山縣)에 있는 아호사(鵝湖寺)에 당대의 석학 두 사람이 만납니다. 주자(朱子)와 육상산(陸象山). 주자는 성리학을 집대성하여 이른바 주자학을 완성한 바로 그 주자이고, 육상산은 명(明)대의 왕양명(王陽明)과 병칭하는 육왕학(陸王學)의 창시자입니다. 이들은 이곳에서 사흘을 머물며 토론과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이를 ‘아호의 회담[鵝湖之會]’이라고 합니다. 물론 만남 전에 두 사람은 서신을 통하여 상당한 논변을 진행하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직접 만난 것입니다. 양쪽 공히 수백 명의 제자들과 수많은 학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입니다.

토론 주제는 주로 공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주자는 사물의 이치를 하나씩 하나씩 탐구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활연관통(豁然貫通)하게 된다고 하였고, 육상산은 자신의 마음으로 들어가 마음수양에 힘쓰는 것이 곧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바른 공부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주자의 입장을 객관인식론이라고 한다면, 육상산의 경우는 주관유심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들은 각각 전자는 이학(理學)으로 후자는 심학(心學)으로 발전하며,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사상계와 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조선은 특히 주자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중국과 일본은 육왕학을 추구하였습니다.

논변은 일방의 승리와 패배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회담장에는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존경심이 흘러 넘쳤지만, 또한 타협할 수 없는 거리가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회담이 끝나고 주자는 육상산을 향해 너무 간이(簡易)하다고 했고, 육상산은 주자를 향해 너무 지리(支離)하다고 하였지요.

확실히 주자학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어느 세월에 그 많은 사물의 이치를 다 알아내고, 어느 겨를에 활연관통한단 말인가요? 말이 활연관통이지 그게 말처럼 쉬운가요? 설혹 어렵게 어렵게 도달했다 해도 다 늙어 죽기 직전에 깨달아서야 무슨 소용인지? 아니 그나마 죽기 전이라도 알면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못하고 평생공부 도로아미타불 되면 이 또한 어떻게 하나요? 결국 주자의 문제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서 아무나 도달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치열한 탐구정신과 엄격한 도덕성으로 무장하고 수십 년에 걸친 수행을 거쳐도 보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상산은 주자의 문제를 지적하며 누구라도 쉽게 성인이 될 수 있는 길을 열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육상산이 열어놓은 길은 이미 맹자가 밝힌 길이기에, 상산 자신도 맹자를 직접 이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맹자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라도 요순(堯舜)이 될 수 있다. 요순이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 무거운 쇳덩어리를 힘이 없어서 들 수 없다고 하면 과연 그렇겠지만, 가벼운 깃털 하나를 힘이 없어 들 수 없다고 하면, 이는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요순의 도는 효제(孝悌)일 뿐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는 알기 어려운 것도, 행하기 불편한 것도 아니다.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요임금과 순임금은 유교에서 가장 숭앙하는 성인이지요. 그런 성인의 경지를 누구라도 쉽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깃털 하나를 드는 것과도 같이 쉬운 것이어서, 이를 어려워서 못한다고 하면, 이는 안 하는 것이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 사랑의 마음을 실천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공자가 말하는 인(仁)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보살펴주는 것.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폐지를 모았다가 주는 것입니다.

2. 성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공부(工夫)는 쉬워야 합니다. 공부는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투입하는 공력을 말합니다. 책과 씨름하며 밤을 새우는 노력도 공부고, 깨달음이나 해탈을 위한 수행도 공부입니다. 기독교에서 구원을 얻기 위해 기울이는 정성과 수고도 물론 공부입니다. 그런데 공부가 어려우면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 겸재 정선의 〈정문입설도〉. 초옥 안엔 정이천이 있고, 양시와 유초가 기다리고 있는데 눈이 한 자나 쌓여 있다. 주자는 양시와 유초가 방 안에서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와 보니 눈이 쌓여있었다고 서술하였다.
주자의 문제는 공부방법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1)성인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근거가 주체의 안과 밖으로 이원화되면서, (2)이론 체계가 너무 방대하고 분석적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이 되는 길은 주체인 ‘내’가 걸어 가야할 길이고, ‘나’의 문제임을 주자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가합니다. 하지만 그 근거가 주체와 외부사물로 이원화되다보니 무엇이 선이고 무엇은 악이며, 무엇은 옳고 무엇은 그른지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엄격한 구분을 통해 악이 선을 침범하거나, 추가 미를 가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북송(北宋)의 낙양(洛陽)에 정명도(程明道)와 정이천(程伊川)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정(二程)이라 불리며 이른바 낙학(洛學)을 창시합니다. 하루는 두 형제가 연회에 초대되었습니다. 술잔이 돌고 취기가 도도해져 가자, 형 명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생들과 어울려 진탕 놀았습니다. 하지만 동생 이천은 꼿꼿한 자세를 잠시도 흐트러지지 않았지요. 마침내 술자리는 파하고 형제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정이천이 형 명도를 찾았습니다.

이천 : 형님! 도학자(道學者)가 되어 어찌 그러실 수 있소? 기생들과 말이요!
명도 : 너는 아직도 기생 끌어안고 있냐! (난 벌써 잊었다.)

정문입설(程門立雪)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양시(楊時)와 유초(遊酢) 두 사람이 정이천(程伊川)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스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천은 정좌 중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스승을 깨울 수가 없어 그대로 선 채 기다렸고, 기다리던 중에 눈이 내렸습니다. 정이천이 깨어보니 눈이 한 자나 쌓이도록 두 사람은 그대로 서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이 고사는 흔히 스승에 대한 제자의 지극한 공경심을 표현하는 이야기로 회자되지만, 한편으론 정이천의 평소 태도가 얼마나 엄격하였는가를 나타내는 좋은 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형 명도가 봄바람에 화기애애하였다면, 동생 이천은 가을 삭풍 같고 차가운 얼음 같은 기풍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정이천은 주자를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주자는 정이천의 책을 한번 보고 평생 마음의 스승으로 삼습니다. 주자학에는 정이천의 영향이 매우 짙게 드리워져 있어서, 주자학을 흔히 정주학(程朱學)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북송에는 다섯 명의 뛰어난 성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주렴계(周濂溪), 장횡거(張橫渠), 소강절(邵康節), 그리고 정명도와 정이천, 이 다섯 사람을 가리켜 흔히 북송오자(北宋五子)라고 합니다. 한번은 장횡거가 정명도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편지에는 “본성이 안정되더라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으니 외물에 구속되는 누를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횡거의 물음이 있었지요. 이에 대한 답장이 정명도의 〈정성서(定性書)〉란 글입니다. 횡거보다 한참 후배인 명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른바 안정이란 움직일 때도 안정되고 고요히 있을 때도 안정되어 보내고 맞이함에 안과 밖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외물을 나의 밖으로 여겨서 나를 끌어다가 외물을 따른다면 이는 자기의 본성을 안과 밖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 이미 안과 밖으로 두 가지 근본을 삼았다면 어찌 안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사물에는 사물 고유의 특성이 있어서 이를 아는 것이 그 사물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꽃에는 꽃의 속성이 있으니까 우리는 “이것은 꽃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꽃의 특성을 알고, 봄에는 피었다가 가을에 열매를 맺는 이치를 찾아가며, 꽃에서 나무로, 나무에서 새와 온갖 짐승들로 넓혀가며 이치를 깨달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활연관통,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게 주자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술자리의 정이천은 외부환경과 자기 자신을 엄격히 구분하고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켜냅니다. 외물에 깨끗한 본성이 더렵혀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잠시라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이 공부가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명도는 이런 공부는 안과 밖, 주체와 객체를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3. 양지, 배우지 않고 아는 힘

유식학(唯識學)이 너무 어려운 길로 접어든 이유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아뢰야식은 본질적으로 염정혼합식(染淨混合識)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더러운 염식이고 무엇이 깨끗한 정식인지를 분명히 나누어 염식은 제거하고 정식만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한 공부가 됩니다. 결국 유식학의 이론체계에는 이 문제가 매우 엄밀하게 서술되어야 하고, 아뢰야식의 속성상 정문훈습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정문훈습은 해탈의 근거가 밖에 있는 것이고 깨달음의 주체는 여전히 ‘나’이므로, 이렇게 안과 밖으로 근거가 이원화되면, 이를 일원화시켜야하는 과제가 유식학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외람되지만 이 숙제는 유식학 안에서는 풀기 어렵습니다.

안과 밖으로 이원화되든, 아님 밖으로 일원화되든, 해탈의 근거가 밖에 있으면 결코 대승이 되지 못합니다. 불교의 성불이든, 유교의 성인의 경지이든, 혹은 기독교의 구원이든, 그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 밖에 있으면, 그 길은 매우 어렵고 복잡해집니다. 기독교는 주체 밖에 있는 절대적 초월신에 구원을 맡겨놓았기 때문에 그 신에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가 되고 맙니다. 그리하여 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세계를 나누는 엄청난 우를 범하게 되지요. 사람 모두가 각자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이 가능하다면 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의 근거는 주체 안에 있습니다. ‘내’ 안으로 들어가면 거기에 해탈의 문이 있고, 성인의 길이 놓여 있습니다. 구원의 사다리 또한 거기에 있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정명도에 의한다면 억지로 찾을 필요도 없고, 강제로 막아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건 누구라도 태어나면서 다 갖고 태어난 지혜이고 능력입니다. 이게 맹자의 양지(良知)·양능(良能)이라고 하였습니다.

4.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한 곳도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한 여인이 어렵게 외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들이 그만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슬픔에 거의 반 미쳐갔습니다. 여인은 부처님을 찾아가 아들을 살려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이여, 아들을 살리고 싶다면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의 겨자씨를 얻어 오너라.”

어디에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있겠습니까. 결국 찾다가 못 찾고 지친 여인은 부처님에게 돌아가 말하지요.

“세존이시여.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한 곳도 없나이다.”

만약 부처님이 여인의 슬픔에 끌려 같이 울며 슬픔을 함께한다면 여인의 고통이 해결될까요? 아마 여인은 위로를 받고, 힐링이 되어 얼마간 고통을 해소한 채 집으로 돌아가 그날은 조금은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여인을 고통으로부터 해탈에 이르는 바른 가르침일까요?

부처님은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알게 합니다. 어찌 보면 매우 냉정한 처방입니다. 한마디 위로 말도, 따뜻한 손길도 없습니다.

“무릇 천지는 그 마음으로 만물을 두루 덮어도 무심하고, 성인은 그 정으로 만물을 따라도 무정하다. 정명도, 〈정성서>”



하늘은 만물을 낳고 길러도 무심합니다. 무심히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따름이지요. 성인은 만물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기쁜 일엔 기쁨으로 슬픈 일엔 슬픔으로 응할 뿐, 자신의 감정은 없습니다. 여인의 지독한 슬픔 앞에서 부처님은 아무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다만 여인으로 하여금 그 슬픔의 본질을 보게 할 따름입니다. 그리하여 지독한 슬픔으로부터 근원적으로 벗어나게 해주지요.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부처님은 실상을 바로 보게 함으로써 해탈의 근거가 밖이 아니라 여인의 마음 안에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큰 사랑입니다.

5. 왜 여래인가

가수 김국환씨가 부른 〈타타타〉란 노래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타타타(tathata)’는 ‘그와 같이’, 혹은 ‘있는 그대로’란 의미의 산스크리트어입니다. 여기에 ‘옴’, 혹은 ‘온 자’란 의미의 ‘아가타(agata)’란 말을 합하면 ‘타타가타(tathagata)’란 합성어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타타가타’는 ‘온 그대로’, 혹은 ‘온 그대로인 자’란 의미이며, 이를 한자로 여래(如來)라 번역하였습니다.
죽음의 슬픔은 외아들을 잃은 여인의 고통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여인에게 제시한 해법은 죽음을 죽음 그대로 보라는 것입니다.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는 법입니다. 이게 바로 ‘타타타’,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슬퍼하니, 이는 삶과 죽음에 기쁨과 슬픔의 관념을 더한 것입니다. 여래는 꽃이 피면 피는 그대로, 꽃이 지면 지는 그대로 관조하는 자입니다. 더할 것도 덜 것도 없이 생긴 그대로를 보는 자. 바로 《부증불감경(不增不減經)》이 그리는 경지이지요.
유식학은 무엇이 더해지고 무엇이 덜어지는지를 분석함으로서 세계는 결국 나의 의식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그림임을 밝혀냅니다. 유식학에 의한다면 우리들의 의식에는, 색칠하고 그 위에 덧칠하고 다시 또 덧칠한 그림들이 층층히 쌓여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덧칠을 지워 본래의 깨끗한 바탕을 회복하는 일이 유식학의 중요한 공부가 됩니다. 하지만 여래장사상은 굳이 지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온전히 내 안으로 들어와 본래 하얀 바탕 그대로를 만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김문갑(철학박사, 충남대 한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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