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스님은 금강경에 대해 총 3회에 걸쳐서 4종으로 번역을 시도했고, 더불어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전부대의륜관(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全部大義綸貫, 이하 《윤관》)을 통해 전체적인 대의를 설명했다.”
21일 오후 2시 동국대 충무로 영상센터 본관 227호에서 열린 제15회 동국대 전자불전문화콘텐츠연구소(소장 보광스님) 학술세미나 ‘근대불교 문헌 번역의 제 문제’에서 ‘《금강경》 번역의 제 문제’를 발표한 김호귀 연구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단)는 용성스님의 《금강경》 번역에 대한 열의를 이처럼 단적으로 표현했다.용성스님이 번역한 《금강경》은 《윤관》을 비롯해 모두 4종이다. 용성대종사전집 제5권에 수록된 번역본을 살펴보면 《윤관》, 상역과해금강경(詳譯科解金剛經), 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및 《윤관》 합본,신역대장경, 신역대장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新譯大藏金剛摩訶般若波羅蜜經)이다.
《윤관》은 《금강경》의 대의에 대한 전체적인 분과 및 내용을 살필 수 있는데 용성스님이 가진 《금강경》에 대한 견해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번역이다.
김호귀 연구교수는 “용성스님이 번역한《금강경》의 경문에 대한 내용은 우선 지극히 조사선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며 “‘금강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제명에 대해서는 ‘무위불심(無爲佛心)을 직지(直指)한 대지혜(大知慧)로써 피안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붙이고 있는데 ‘금강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제명은 용성 번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경우로서 금강을 마하반야바라밀과 동치시켜서 해석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용성스님에게 있어서 금강은 금강석에 대한 비유이면서 더불어 반야묘지의 법을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에서 형식과 구성 등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건 《신역대장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이다. 《신역대장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은 용복사 간행본을 텍스트로 삼아 한문으로 된 경문을 162단락으로 나누고 우리말 순서에 맞춰 배열했다. 오가해 가운데 야부(冶父)의 설을 중심으로 110구절 가운데 88구절을 인용하면서 변형시킨 부분이 보이는 것도 특징이다. 야부가 설명한 대목에 대해 함허의 《설의(說誼)》 대목을 인용해 93회에 걸쳐 주석을 더했고, 야부가 설명한 대목에 용성스님이 13회에 걸쳐 주석을 붙인 것도 《신역대장금강마하반야바라밀경》만의 특징이다. 경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경문의 단락 중에도 용성스님의 대의를 설명한 부분이 33회나 발견된다.
김호귀 연구교수는 “용성스님 번역본의 해석 내지 해설의 내용을 때로는 그 형식과 결부시켜서 파악해볼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는 용성스님의 선적인 이해가 잘 드러나 있다”며 “예를 들어 ‘삼십 년 이후에는 어떤 뜻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번역은 현생을 마치고 환생해 본래자리로 도래한다는 것으로 다음 생을 가리키는데 삼십 년은 수행하는 기간으로서 한평생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금강경》에 대한 용성스님의 열의는 용성스님이 서술한 《저술과 번역에 대한 연기》에 잘 드러나 있다. 《저술과 번역에 대한 연기》에 따르면 1910년 용성스님이 47세가 되는 때 “옛날에 우리 불교를 배척한 자는 정자와 주자를 능가할 자가 없었고, 현재에 더욱 심하게 배척하는 자는 예수교이다. 우리가 먼저 배척할 것은 없지만 한번 쯤 변론할 필요는 있다”는 호은장로의 권유를 받아서 칠불선원 조실에서 5월10일 시작해 7월10일에 탈고한 《귀원정종》 이후로 3·1독립 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서대문 감옥에서 불경의 조선말 번역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921년 3월에 출감한 용성스님은 선한문(鮮漢文)으로 《심조만유론》을 저술한 이후에 이어서 선한문으로 《천노금강경》을 번역하고 주석을 내었으며, 또 《금강경》을 상세하게 번역하고 분과하여 조선글로 주해를 하는 등 《금강경》의 바른 의미를 전하고자 노력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심조만유론》 번역의 제 문제-한성자(전 BK21 연구교수) △《대승기신론》 번역의 제 문제-현석스님(동국대 불교대학·해인사 승가대학 강사) △《선문촬요》 번역의 제 문제-법상스님(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장)이 발표돼 용성스님이 번역한 문헌들의 총체적인 특징을 되짚었다.
-강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