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품은 중생들이 전도망상을 여의고 진실한 실상을 보는 사제의 진리를 설하므로 사제품이라 한다. 사성제는 근본불교에서 설해진 가장 근본이 되는 가르침으로, 일체법의 진실을 바로 알아서 생사고를 여의고 해탈을 얻는 네 가지 성스런 진리로 통한다. 곧 현상의 제법이 어떤 양상인지를 바로 아는 고제, 그 원인을 아는 집제, 그 원인을 소멸함을 멸제, 소멸하는 도법을 도제라고 한다.

《열반경》에서 사성제에 대한 설법은 지금의 사제품과 성행품(聖行品), 두 번에 걸쳐 나타난다. 그중에서 지금의 사제품은 전도되지 않은 진실의 경지에서 본 실상을 얻는 사제이니 대승 구경 일실의 사제[一實四諦]이다. 그리고 성행품(제19)에서는 법상에 따라 사제의 진리가 달라지는 사종사제(四種四諦)를 설하고 있다. 이는 근본불교로부터 대승에 이르는 교법의 취지에서 본 사제의 진리를 설하고 있다.

사종사제란 생멸사제(生滅四諦) 무생사제(無生四諦) 무량사제(無量四諦) 무작사제(無作四諦)이다. 생멸사제는 인연법의 중생이 삼계 안의 구체적인 선(善)을 행하며, 유위법을 분석하여 무상 무아 고를 깨달아 미혹을 타파하고 해탈을 얻는 사제인데 삼장교에서 설한다. 무생사제는 연기법의 중생이 삼계 안의 이치로 선을 행하며, 무위법을 체득하여 공에 들어가 미혹을 타파하고 피안에 들어가는 사제인데 통교에서 설한다. 무량사제는 연기법의 중생이 삼계 밖의 구체적인 선을 행하며, 법계를 두루 거치며 공‧가‧중에 들어 미혹을 타파하는 사제인데 별교에서 설한다. 무작사제는 연기법의 중생이 삼계 밖의 이치로 선을 행하며, 실상법에 들어 하나의 미혹을 타파하는 것이 일체 미혹을 타파하는 사제인데 원교에서 설한다.

그렇다면 지금 사제품의 일실사제는 <성행품>의 사종사제 중에서 무작사제를 설하는 셈이다.

이 품에서 밝히고자 하는 일실사제(一實四諦)란 불성(佛性)의 실상(實相)으로 일체처에 두루하며, 유위 무위의 일체법에 대해서 밝게 실상을 아는 진리이다. 만약 이를 알지 못하면 진리라고 할 수 없으니 여래의 깊은 경계는 항상 주하고 변치 않는 미묘하고 비밀스런 법신임을 아는 것이 이 사제품이다.

이 품의 전체 구성은 부처님이 가섭보살에게 사제를 밝히고, 가섭이 이를 깨닫는 영해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내용은 중생의 미혹을 밝히고, 미혹의 과를 밝히며, 이해함을 밝히고, 이해한 과를 밝히며, 이해한 바를 맺고, 미혹을 맺는 부분이다. 간략히 그 대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상주법신의 불변을 바로 알지 못하는 고성제

먼저, 이 품에서의 고성제란 괴로운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실[一實]에서 중생들의 갖가지 괴로움의 실상을 아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고제의 미혹을 들어보면, 중생들이 여래의 깊고 깊은 경계가 항상 머물고 변치 않는 비밀의 법신임을 알지 못하고 밥먹는 몸으로 알거나 법신이 아니라고 하면 이는 법을 법이 아니라고 보고, 법 아닌 것을 법으로 보는 이와 같은 미혹에 빠져있는 것을 고제라고 한다. 둘째로 고제에서 미혹의 과는 고의 실상을 알지 못하여 나쁜 악취에 떨어져 생사윤회고를 받음이다. 곧 이는 대승 열반의 입장에서 고성제를 밝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무너지지 않는 정법을 미혹한 집성제

다음으로 집성제란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이다. 진실한 중에서 참다운 지혜를 내지 못하고 잘못된 법을 바른 법이라 하고, 바른 법을 끊어 버려서 진실한 법이 오래 주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미혹의 과로 인하여 생사에 헤매면서 많은 고통을 받고 해탈을 얻지 못하게 함을 집성제라 한다. 따라서 열반경의 집성제(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진리)는 법이 항상 주(住)하고 변하지 않는 줄을 아는 것을 말한다.

3) 단멸법 중에서 여래장을 아는 멸성제

멸성제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이다. 공한 법을 닦아 번뇌를 단멸하고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어 여래의 비밀법장을 아는 것을 말한다. 곧 󰡔열반경󰡕의 멸성제는 설사 여래장을 보지 못하더라도 일체 번뇌를 없애버려서 들어갈 수 있다고 마음을 내면 이 인연으로 모든 법에 자재함을 얻고 여래의 비밀법장을 알게 된다. 온갖 번뇌를 끊어서 여래의 비밀법장은 아(我)가 있고 공적하지 않음을 알게 되니 이와 같이 닦지 않으면 공한 법을 닦는다 하더라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가 될 수 없다.

4) 삼보와 바른 해탈을 이루는 도성제

도성제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진리이다. 곧 바른 마음을 내어 삼보(三寶)에 해탈을 이루어 부처님이 항상 주(住)하여 변하지 않으며 법보 승보도 또한 그러함을 아는 것을 말한다. 만약 어떤 중생이 뒤바뀐 생각으로 삼보와 해탈은 없고 생사가 환술과 같다고 익히면 삼계에서 오래도록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곧 네 가지 뒤바뀐 마음으로 법 아닌 것을 법이라 여기고, 삼보가 무상하다는 소견을 닦으면 도성제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열반경》에서는 하나의 진실 경계에서 삼보의 실상을 바로 알아 깨달음을 얻는 사성제를 설하고 있다.

이기운/불교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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