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 스님이 금강산 유점사에 머물러 있을 때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왜구가 절에 쳐들어와 겁탈하고는 지정 스님에게 길을 가리키라고 하였다. 촌락을 약탈하려는 것이다. 유점사 계곡에서 냇물을 따라 고성까지 가서 되돌아오는 2백 70리 길은 옛날부터 사람의 자취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험해서 다닐 여지가 없었다.
지정 스님은 앞서 가면서 구점으로 가는 지름길을 가리켜 주지 않았다. 도중에 큰비를 만나 앞뒤로 길이 끊기고 냇물과 골짜기에 물이 불어 넘쳤다. 50여명의 왜병은 모두 지치고 굶주려서 일어나지 못했다.
지정 스님은 어려서부터 헤엄을 잘 쳤으므로 드디어 벌거벗은 몸으로 깊은 물에 뛰어 들었다. 왜병들이 모두 놀라며 승려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고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지정 스님은 잠수한 채 엎드려 가서 무성한 갈대밭에 도착하여 허리춤에 넣어 둔 밥을 배불리 먹고 몸을 숨겨 몰래 도망하였다.
40여 명의 왜병이 다 죽고 그 나머지 7명은 험준한 곳을 넘어 간성 건봉사에 도달하여 살아날 수 있었다. 지정 스님은 지금 안변 석사에 머물러 계신다.(『어우야담』1권, 인륜편, 충의)

僧智正居金剛山楡岾寺. 萬曆壬辰之亂. 倭寇入寺攻劫. 使智正指路. 將掠村閭. 楡岾溪洞沿川達高城. 回還復. 周二百七十里. 自古人跡不通. 險絶無蹊. 智正先路而行. 不指狗岾直路. 中道遇大雨. 進退路絶川漲壑溢. 五十餘倭盡憊飢不得起. 智正自幼善遊水. 遂赤身投深潭. 諸倭皆驚謂僧己死. 罔知行止. 智正潛?水中. 伏行達于亂葦中. 腰間??飽喫. 竄身潛逃. 四十餘倭盡死. 其餘七倭踰峻險達于杆城乾鳳寺得活. 智正今居安邊石寺. (『於于野談』 卷之一 人倫篇 忠義)

박상란/한국불교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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