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원(願)을 담은 채 합장을 하고 석가모니불을 외며 탑 주위를 돈다. 탑돌이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불자들 사이에 보편화된 신앙일 뿐 아니라 비불자들도 소원을 비는 민속으로 정착됐다. 불사리와 경전, 불상 등을 봉안하고 우뚝 서 있는 탑은 불신(佛身)과 같이 여겨져 구원과 경배의 대상이 되어 왔다.
탑이란 ‘탑파(塔婆)’, 즉 범어의 ‘스투파(stupa)’ 또는 팔리어 ‘투우파(thupa)’의 음역에서 유래된 약칭으로, 사리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발생한 불교의 독특한 조형물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인도의 장례법에 따라 화장의 예를 갖춤으로써 사리를 얻게 되었고 이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구조물을 쌓은 것이 바로 탑파, 즉 불탑이다.
이때 세운 8기의 탑을 ‘근본팔탑’이라 한다. 이후 사리를 봉안해 탑을 세우는 일이 일반에 유행함에 따라 수량이 한정된 진신사리만으로는 수요를 맞출 수 없어 진신사리가 아닌 법신사리(경전)사상이 생기게 되었다. 탑의 원형을 보여주는 스투파로는 기원전 3세기에 이룩된 원분(圓墳)형태를 이루고 있는 인도 산치의 대탑이 유명하다.
한국의 탑은 세계 불교예술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그 기원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에 이르는 삼국 말기의 시기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탑은 그 소재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등으로 나뉘며, 대체로 중국은 벽돌로써, 일본은 목재로써, 우리나라는 석재로 탑을 조성한 특징이 있다.
우리나라를 ‘석탑의 나라’라 부르는 것도 현존하는 탑 거의 모두가 화강석을 재료로 한 석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탑의 발생과 그 계보의 변천과정은 목탑, 목탑의 양식을 본받은 전탑, 목탑과 전탑의 두 양식을 갖춘 석탑의 순서로 양식이 정립돼 왔다.

목탑(木塔)
우리나라 초기 탑은 목조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세기 말부터 건립되기 시작한 목탑은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은 물론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와 조선조까지 계속되었다. 목탑은 다른 건축과는 달리 수직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고도의 건축 기술이 없이는 건립이 불가능하다. 특히 다른 불탑들과는 달리 실내에 공간이 마련돼 예배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고구려의 목탑자리로는 평양 청암리 등 4곳이, 백제 때는 부여 금강사 절터 등 5곳이, 신라 때에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는 황룡사 목탑 등 4곳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목탑으로는 조선후기에 건립된 법주사 팔상전(국보 55호)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전탑(塼塔)
『삼국유사』와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전탑을 봉안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탑의 특징은 목탑이나 석탑과 형식은 동일하나 중국 전탑의 영향으로 옥개의 상하에 층단을 마련하고 감실을 설치한 것이 특징이다. 또 화강암을 재료로 혼용한 것은 중국의 전탑이 벽돌만으로 축조된 것과는 다른 점이다.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성행했다는 점도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 전탑은 매우 희귀해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있는 것은 안동 신세동 7층전탑(국보 16호)과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 송림사 5층전탑(보물 189호), 안동 조탑동 5층전탑(보물 57호), 안동 동부동 5층전탑(보물 56호) 등 모두 5기에 지나지 않는다.

모전석탑(模塼石塔)
전탑의 형식을 모방한 석탑. 우리나라에서는 전탑보다 석탑이 더 많이 유행했다. 그러나 탑재(塔材)를 구하거나 조탑 과정이 용이하지 않는 특수성으로 인해 뿌리를 내리지는 못하였다. 형태는 석재를 벽돌처럼 작게 가공해 전탑 모양으로 쌓아올린 유형과 일반적인 석탑과 동일한 형태를 취하면서 표면을 전탑처럼 가공해 축조한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 유형으로는 경주 분황사 석탑(국보 30호)을 비롯해 제천 장락리 7층석탑(보물 459호) 등 9기 정도가 있으며, 두 번째 유형으로는 의성 탑리 5층석탑 등 7기가 남아있다.

석탑(石塔)
목탑이나 전탑은 석탑의 완성을 위한 밑거름 역할을 했다고 할 정도로 석탑은 우리나라 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우리나라 석탑의 서장을 장식하는 것은 백제시대에 건립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과 부여 정림사지 석탑(국보 9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형양식의 완성은 신라시대에 이룩됐다. 한국의 석탑이 곧 신라 석탑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라석탑으로 가장 앞선 작품은 선덕여왕 3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30호)이다.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모전석탑으로 불리는 이 석탑은 신라석탑의 조형(祖型)으로 꼽힌다. 불국사 다보탑(국보 21호) 석가탑(국보 22호) 등 우리 민족의 예술적 천재성이 발휘된 빼어난 석탑이 건립된 것도 바로 이 때다. 특히 불국사 석가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으로 상하 비례나 형태의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석탑 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불천(佛天)의 신비가 탑을 중심으로 발현되고 있는 느낌까지 줄 정도로 신비롭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경주 감은사지 3층석탑(국보 112호) 고선사지 3층석탑(국보 38호) 갈항사 3층석탑(국보 99호) 등 수많은 명탑이 국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데, 국보는 27점, 보물은 126점에 달한다.

금동탑·청동탑·철탑
금동이나 청동, 철 등 금속제탑은 옥외에 설치해 예배하기보다 봉안하기 위해 만든 것이므로 일반적인 탑이라기보다는 장엄물에 가깝다. 또한 사리를 담은 사리장엄구도 작은 탑의 모양을 한 경우가 많다. 높이 1.55m로 작은 석탑과 같은 크기의 고려시대 작품인 금동대탑(국보 213호)은 이 같은 유형의 대표작으로 탑파는 물론 목조건축이나 조각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박윤경/MBC 구성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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