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스님 진영.

한 중이 조주스님에게 묻되 “개도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니 조주스님은 “무(無)”라 하셨으니, 조주는 무엇으로 인하여 ‘무’라 하였는고?

이 한 생각을 짓되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닭이 알을 품듯 앞 생각과 뒷 생각이 서로 끊어짐이 없어서 샘물 흘러가듯 가되 아침 일찍 찬물에 얼굴 씻고 고요한 마음을 단정히 하고 앉아 화두를 들라. 그리하여 개가 불성이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있고 없는 것이 다 공(空)하여 참으로 없단 말인가?

이같은 요별망상은 옛 사당의 찬 향로와 같이 고요하게 하고 화두는 성성(惺惺)하게 하여 밝은 달이 허공에 뚜렷하게 드러난 것 같이 하여 망상은 적적하고 화두는 성성하여 적적함이 달 덩어리와 달 광명이 서로 어김이 없이 지은 것 같이 화두를 지어 가되 저녁 때에는 살펴보아 망상을 많이 피고 화두를 잘못 들었거든 자성(自性)을 불러 꾸짓되, 주인공아! 내 말을 들어라!

네가 비롯함이 없으므로 금생까지 이르러 공부를 등지고 날로 망상에 합하여 화택수고(火宅受苦)를 면치 못하는 놈이 금생에도 이와 같이 혼침산란(昏沈散亂) 속에 게으르게 공부하게 되니 만약 오늘 밤이라도 눈빛이 땅에 떨어지면 천당 갈지 지옥 갈지 지옥 갈지 아귀 될지 마복(馬腹)을 향할지 우복(牛腹)을 향할지 모르거늘 어찌 공부를 이와 같이 방향없이 짓는고! 특별히 경계할지어다.

또한 수마(睡魔)를 이기지 못하여 잠을 자되 부처님이 삼경(三更) 외에 잠을 허락하지 아니하였으니 세 시간만 잠을 자고 일어나서 또 찬물에 얼굴을 씻고 고요한 마음으로 앉아 생각하되 요행히 간밤을 살아 왔으니 오늘은 결정코 공부를 판단내어 훗 날에 근심이 없게 하리라 하고, 공부를 그 전날보다 더 지극한 마음으로 날마다 이와 같이 공부를 지어갈 진대 어찌 10년 20년을 허송세월이라 하리요.

▲ 덕숭산에 자리한 만공탑.

깨달음이란 어느 한정된 기간에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그 근기에 따라서 고요한 밤, 밝은 달을 보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새벽 종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원촌(遠村)의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원곡(遠谷)의 행상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이웃집 아기 우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기도 하며, 혹 선지식의 설법을 듣고 언하(言下)에서 도를 깨닫기도 하며, 좋은 인연을 따라 머리 머리의 도를 깨달음에 신기로운 광명이 하늘도 덮고 땅도 덮고 밤도 없고 낮도 없는 광명의 세계를 이룬다 하나 월면(月面)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털끝 만큼도 밝음이 없고 털끝 만큼도 어두운 것이 없도다. 혹자가 이르되 도를 깨달음에 있어서 지혜가 명철하여 일체법을 하나도 모를 것이 없이 다 안다 하나 월면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지혜가 없어 가히 한 번도 앎이 없으며 한 법도 가히 모를 것이 있음이 없도다. 또 혹 말하되 도를 깨달음에 있어서 살고 죽는 것이 없다 하나, 월면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혹 살기도 하며 혹 죽기도 하여 죽고 삶이 없음도 있음이 없도다. 혹 말하되, 도를 깨달음에 있어서 다시 보임(保任)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아서 다 물들음이 없다 하나 월면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배고픔이 옴에 밥 생각이 간절하며 졸음이 옴에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여 다시 물들음이 없음이 있음이 없도다. 혹 또 이르길 도를 깨달음에 있어서 다시 닦고 닦아 증득한다 하나 월면의 아는 바는 그렇지 아니하여 본래 잃어버린 것이 없어 다시 증득할 것이 있음이 없도다. 산과 산, 물과 물이 제각각 올연(兀然)한 소식을 뉘라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사람이 이 도리를 잘못 알면 지옥가기 화살이요, 만약 이 도리를 명백하게 살려 얻을진대 모든 불조의 스승이 되어 만반 징조 다스릴제 푸른 산 푸른 물을 향하여 불사(佛事)를 지으며, 조각조각 흰구름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고요한 밤 원숭이 울음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돌장승 피리부는 소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쇠계집 아기 낳는 곳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해골 속 푸른 눈알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고목나무 속 용의 울음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오고 가는 것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술잔과 고깃점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앉고 눕는 것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고요하고 움직이는 것을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밝은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혹 어두운 머리가 오면 어두운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푸른 머리가 오면 푸른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누런 머리가 오면 누런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붉은 머리가 오면 붉은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모진 머리가 오면 모진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둥근 머리가 오면 둥근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긴 머리가 오면 긴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착한 머리가 오면 착한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악한 머리가 오면 악한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옳은 머리가 오면 옳은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그른 머리가 오면 그른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며, 삼라만상의 정여무정(情輿無情)에 건건머리 머리를 향하여 불사를 지으니 이 무슨 도리인고?

밝고 밝은 조사의 뜻이로다.

만공스님 행장

1871년 3월7일 전북 태인(정읍) 출생. 13세에 김제 금산사, 전주 봉서사, 논산 쌍계사를 거쳐 계룡산 동학사에서 진암(眞巖)스님 문하서 행자로 생활했다.
스님은 수덕사, 정혜사, 견성암, 간월암을 중창 또는 복원했다.
1920년대 초에는 선학원 설립운동에 참여하고 1930년대 중반 '조선불교선학원종무원' 종정을 지내는 등 일본불교에 맞서 조선불교의 정체성 확립에 앞장섰다. 말년에는 덕숭산 상봉 근처 전월사에 머물며 선풍을 일으켰다.
1946년 10월20일(세수 75세, 법납 62세) 원적에 들었다.

●1871 전북 태인 출생
●1883 공주 동학사 출가
●1884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스님을 은사, 경허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
●1922 선학원 선우공제회 수도부이사
●1934~1936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 초대 이사장
●1935 조선불교선종 대표 종정
●1946 덕숭산 상봉 전월사에서 세수 75세, 법랍 62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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